"차도르 쓰고 전쟁터 취재한 게 가장 짜릿"

이란·이라크전이 한창이던 1982년. KBS 국제부(당시 외신부)의 3년차 여기자는 부장에게 "무거운 뉴스를 다루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선배 남자 기자들은 '화끈한' 전쟁뉴스를 보도하는데 그에게는 다이애나비 결혼이나 해외토픽 같은 '말랑말랑'한 뉴스만 맡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장은 "여자가 어떻게 이란·이라크전을 (보도)하나?"라고 답했다. 16년이 지난 1998년. 그 여기자는 중동에서 이라크 공습을 취재했고, 1999년엔 코소보 전쟁을 현장에서 보도했다.

이정옥(53)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이 최근 이런 취재 경험들을 담은 책, '여자특파원 국경을 넘다'를 냈다. 1979년 TBC(동양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1980년 TBC가 KBS로 통합되면서 국제부 기자가 됐다. 이후 문화부·경제부를 거쳐 1997년 KBS 파리특파원으로 3년간 나가 코소보전, 이라크전, 터키 지진, 예멘 인질납치 등을 취재했다. 그리고 KBS라디오에서 '함께하는 세계 이정옥입니다'를 진행하다가 지난해 말 방송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선진국보다는 분쟁지역이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갈 때 훨씬 흥분됐어요. 기자니까 책상에 앉아 있는 게 힘들지, 폭격과 전투의 전쟁터로 가는 건 힘들지 않았어요." 그는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애착을 느낀 취재지로 이란을 꼽았다. 1993년 국내 여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차도르를 쓰고 현장 보도한 곳이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이면 경찰에 혼나고, 남자인 카메라 기자들과 함께 식당에도 못 가면서 3주간 고생했어요. 그래도 차도르를 쓴 채 마이크를 잡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가 쓴 책의 표지에도 이란에서 차도르를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