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씨구… 신명 가락에 스트레스 싹~"

지난 19일 경기도 광명의 한 극단 지하 연습실. 40~50대 남녀 20여명이 디스코에 맞춰 양손에 북채를 들고 국악기인 장구를 두드렸다. 그러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였고, 동작이 커지더니 그대로 춤이 됐다. 연습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 이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틀었지만 이들이 내뿜은 열기 때문인지 실내는 무덥기만 했다. 하지만 힘든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과 주부인 이들이 연습하는 것은 '엿장수들의 음악' 품바다. 품바는 원래 장단에 맞추어 흥을 돋우는 구전(口傳)민요의 일종이었다. 그런데 어느 결인가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동냥하는 걸인의 대명사처럼 변질됐다. 하지만 이곳 '품바 아카데미'에는 걸인도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없다.

직장인 이명순(51)씨는 "배운 지 3개월 됐는데, 매일 2시간씩 연습할 정도로 푹 빠졌다"며 "힘들 때 실컷 두드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했다. 주부 김의숙(62)씨는 "우울증이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3년이나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었는데 품바를 시작하면서 걱정이 사라져 요즘은 병원에 가지 않는다"며 "내겐 품바가 병을 치료해준 약"이라고 했다.

취미로 품바를 배우다가 깊은 흥미를 느껴 아예 전업 품바 예능인으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이상명(41)씨는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4년 전에 우연히 품바를 알게 됐는데 그때 내 안의 끼를 발견해 각설이가 됐다"며 "좀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품바에 대한 사람들의 여전한 편견 때문에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주부 이애자(52)씨는 "품바 이미지가 나빠 나도 처음 배울 때는 남편한테 숨겼었다"며 "우리 정서에 맞는 민속공연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한국품바예술협회 선우원(51) 부회장은 "최근 3~4년 사이에 품바를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다"며 "지금은 전국 3곳에 '품바 아카데미'가 있고, 수강생을 합치면 80명 정도 된다"고 했다. '품바 아카데미' 운영자인 아랑극단 조인숙(43) 대표는 "이제 품바에서 각설이 이미지를 벗겨내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처럼 널리 알려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문화콘텐츠로 만들어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년 전 정년퇴직 후 품바를 배우고 있는 노윤철(58)씨는 "품바는 트로트 같은 대중가요와도 쉽게 어울린다"며 "품바의 매력은 내가 즐겁다는 것과 동시에 남도 즐겁고 편하게 해주는 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