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인셉션… '무의식'도 훔칠 수 있다면… 하루키 꿈에 가고싶다

타인의 꿈속에 침입할 수 있는 미래. '드림머신'이란 기계 하나로 누군가의 꿈속에서 아이디어를 훔치고 꿈을 조정해, 특정한 무의식을 심어놓을 수도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이런 세상이 가능하다면 스마트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거대 자본들이 스티브 잡스의 머릿속을 '인셉션'(영화 속에선 특정한 무의식을 타인의 머리에 삽입하는 것을 의미한다)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의 꿈속을 강탈해 아이디어를 포획할지도 모를 일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는 명성대로 복잡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인셉션'의 엔딩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는데, 이런 결과는 감독이 관객의 무의식을 제대로 인셉션한 결과다. 아내를 죽인 누명을 쓰고 고향에 돌아가길 갈망하는 주인공이 거대 에너지 회사 상속자의 머릿속을 인셉션한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아는 것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용어를 미리 알아두고 가는 건 유효하다. 설계자·추출자·토템·림보·킥 같은 용어들은 중력조차 무시한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감독이 만들어낸 개념어들이니까.

꿈속에서 타인의 무의식을 훔칠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쩌면 그것이 창작자로서 그의 고뇌의 산물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소설가인 나로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꿈속에 들어가 제목과 스타일을 만드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훔쳐오고 싶다. 그뿐인가. 커트 보네것의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그 시니컬한 유머감각은 어떻고. 김승옥의 초기 단편에 보이는 견고한 문장들과, 벌어진 일상의 틈을 멋진 이야기들로 박음질하는 폴 오스터의 수공예적인 바느질 솜씨 역시 언제든 훔쳐오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선 이런 일이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다. '애플'이 그저 '사과'였을 때 세상이 더 살기 편했다는 누군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로 다운받은 애플리케이션으로 모기도 퇴치하고 욕도 대신 해주는 세상에선, 작가의 상상력도 여간해서 현실을 쫓아가기 힘들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다크 나이트'같은 대작을 보고도 졸기 일쑤였던 H와 봤는데, 2시간이 훌쩍 넘는 그 긴 러닝타임 동안 그는 한 번도 졸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SF를 광적으로 싫어하는 그도 한스 짐머의 음악만은 어쩔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졸릴 틈을 안 주더라고! 어찌나 쾅쾅대던지!" 이 말인즉, 한스 짐머와 크리스토퍼 놀런의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는 뜻이다. 인셉션은 한 마디로 졸릴 틈 없이 무의식을 탱크처럼 쾅쾅대며 밟아가니까 말이다. 놀런은 정말 놀랍다! 인셉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개봉: 7월 21일/ 관객수: 119만8000명(25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