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은 원칙 지켜야… 국론 통일도 절실"

"일본 외무성 과장과 자주 다투던 기억이 생생한데 일본에서 '한류(韓流)' 바람이 부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다."

27일 퇴임한 이규형(59) 전 러시아 대사는 35년의 외교관 생활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올 상반기 퇴임식에서 최선임자인 그가 대표로 퇴임사를 했다. 그는 1980년대 주일대사관에서 1등서기관으로 근무할 때 재일(在日)한국인 인권과 원폭 피해자 문제 등으로 일본 외무성 담당 과장과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붉히며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국익을 위해 외교 전선에서 투지를 갖고 싸운 보람 있는 시절이었다"고 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외무고시 8회에 합격한 이 전 대사는 방글라데시 대사, 외교부 대변인, 제2차관을 거쳐 2007년부터 올 연초까지 러시아 대사로 근무했다. 유엔대표부와 중국·일본·러시아 대사관에서 두루 일한 그는 후배들에게 "강국들은 외교전에서 여러 외교적 수단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단기적 성과를 위해 국가 안보나 주권 평등 같은 원칙에서 양보하기 시작하면 계속 수세에 놓이게 된다"며 원칙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다만 안보나 중대 국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국론의 통일과 같은 국민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날 그를 비롯해 김웅남 전 브루나이 대사, 박찬진 전 레바논 대사, 변대호 전 크로아티아 대사 등 9명의 외교관이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