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 서린 망국의 恨

1910년 경술국치 전후 활동했던 인물들의 글씨를 통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8월 31일까지 개최하는 '붓길, 역사의 길' 특별전은 이완용·박제순·조중응 등 매국(賣國)에 가담했던 사람들과 민영환·황현·안중근 등 나라를 위해 순국(殉國)한 이들의 필적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귀국하기 직전인 1908년 5월 한국 고관(高官)들과 주고받은 한시(漢詩)는 보는 사람을 씁쓸하게 한다.

이토는 '뭇사람들과 헤어지자니 더욱 아쉬워/ 고운 얼굴에 흰머리는 바로 신선들이다/ 교린(交隣)의 패월(覇月·달이 빛을 발하는 때)이 맹단(盟壇)에 남아 있으니/ 양국의 화기(和氣)가 오랫동안 맴돌리라'라는 칠언절구를 크게 썼다. 여기에 김윤식·조중응·박제순이 작은 글씨로 차운시(次韻詩)를 덧붙였다. 을사오적의 한 명인 박제순은 '세상에 우뚝 선 풍모는 스스로 탁월하셔서/ 물러나 쉬는 즐거운 곳에서 신선이 되시네/ 만리 고국으로 돌아가는 꿈 꾸며/ 밝은 달 창랑의 물가에서 낚시질하시네'라고 아부했다.

1905년 11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이 명함에 쓴 유서도 전시된다. '아,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에서 잔멸하리라.(…) 우리 이천만 동포형제들이 일심 협력하여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저승에서 기뻐 웃으리라'는 내용이다.

이밖에 대원군의 그림과 글씨, 고종이 아들 순종에게 '정헌(正軒)'이라는 호를 내려주면서 쓴 글, 김옥균·유길준 등 개화파 지식인의 필적 등이 함께 나왔다. (02)580-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