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금싸라기 판교' 4993가구가 7개월째 빈 이유는?

"이곳은 판교IC가 가깝기 때문에 전세 물건이 없어서 못 나가요. 왜 빈집으로 놔두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26일 경기도 판교신도시의 백현마을 일대. 판교신도시 내에서도 입지여건이 좋은 이 일대에는 5000가구의 주택이 완공된 지 7개월이 넘도록 빈집으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근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성남시 중원구·수정구 구(舊)시가지 재개발 구역 주민들을 위해 지어놓은 이주용 주택. LH는 성남 구시가지에 순환재개발 방식을 도입해 사업을 추진했지만 주택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예기치 못한 딜레마에 빠졌다.

원주민들이 이주를 꺼리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이주 주택은 장기간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금싸라기 땅에 5000가구 7개월째 빈집으로 방치

성남 재개발은 규모(1만여가구)도 크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컸던 사업이다. 지난해 '용산 참사' 이후 재개발의 이상적인 모델로 꼽혔던 순환재개발이 적용된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순환재개발은 원래 살던 거주자들이 이주할 집을 먼저 지어 이주시킨 후 기존 집을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는 방식이다.

LH는 이미 지난 2006년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난곡지구에 이 방식을 적용해 2300여가구를 성공적으로 입주시켰다. 성남 구시가지 중에서도 단대구역은 큰 문제 없이 이주가 끝났다. 낡은 집과 상가가 밀집해 있던 단대구역은 2008년 건물 철거에 들어가 1년 만에 7만6204㎡(2만3000평)의 철거를 마치고 지난해 아파트 건설에 들어갔다.

LH 관계자는 "일반 재개발 방식보다 이주 주택을 마련하고 진행하는 순환재개발이 훨씬 사업하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택경기가 꺾이고 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사업이 꼬이고 있다. LH는 지난해 말 판교신도시에 4993가구의 이주 주택을 완공하고 주민들에게 이주를 요청했지만 주민들은 "관리처분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주를 하면 협상력이 약해진다"며 거부했다. 관리처분 단계가 지나야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부담금을 알 수 있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지 기존 집을 내주고 현금을 받을지도 결정할 수 있다.

◆"순환재개발, 현실성 떨어져… 새 틀 짜야"

순환재개발은 재개발 구역 거주자들의 주거안정을 보장하고 사업속도를 높인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선임연구위원은 "순환재개발은 이론적으론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행자가 없고 이주 주택을 마련할 땅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재 순환재개발을 할 수 있는 주체는 LH 등 공공기관인데 이들 기관도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순환재개발 방식이 재개발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이 아닌 만큼 새 틀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순환재개발의 취지는 좋지만 현재의 철거 개발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안이 되긴 어렵다"며 "전체 도시계획을 세워놓고 소규모로 사업을 진행하는 수복재개발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복재개발(rehabilitation)은 모든 시설물을 헐고 도로·아파트 등을 새로 짓는 현재의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설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노후·불량 요인만을 제거하는 소극적인 개발방식. 심 교수는 "뉴욕의 할렘이 재개발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지금처럼 단기간에 모두 개발하지 말고 20~30년을 내다보고 조금씩 도시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순환재개발

재개발과 관련, 공사기간 중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미리 지어 임대해주는 사업 방식. 이주 대책을 미리 마련해 사업시행을 원활하게 하고, 재개발 이주 수요 증가로 인한 인근지역의 전세금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