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인형들 세월을 입었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로 유명한 닥종이 작가 김영희씨가 29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 〈미술관의 여름〉을 갖는다. 최근 2년간 손으로 만든 닥종이 인형 64점과 사진에 물감을 덧칠해 제작한 회화 54점을 함께 선보인다.

올해 예순여섯인 작가는 다섯 살 때 처음 닥종이 인형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닥종이 인형들은 한층 정제된 색과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양손에 폭신한 거위를 들고 흐뭇하게 웃는 〈거위 든 아이〉, 소년이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꽃피리를 부는 〈봄이 오는 소리〉 등 작가 특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한 소녀가 발치에 하얀 칼라 한 송이를 두고 앉아 있는 〈칼라의 꿈〉에는 사춘기를 맞은 예비 숙녀의 수줍음이 배어 있다. 한지로 만든 빨간 치마와 노란 모자, 파란 신발도 여전히 곱고 여리다.

이번에 보여준 변화는 남자어른이 등장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동안 "별로 예쁘지 않아서"라며 남자어른은 만들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덩실덩실 춤추는 남자 〈얼씨구 좋다〉, 과장된 가면을 덮어쓰고 놀이에 심취한 남자 〈수문장 놀이〉에선 활짝 웃는 얼굴 아래 스며 있는 해학적 슬픔이 느껴진다. 마냥 어리고 순수하게만 보이던 닥종이 인형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세월을 입었다.

2년 전 작가가 처음 시도했던 사진 작업은 주제와 작업 방식에서 한층 새롭고 다채로워졌다. 고층 아파트와 네온사인 풍경 사진을 배경으로 닥종이 인형을 배치한 뒤 작가가 다시 촬영해 선보였던 사진 작품들은 생생하고 질박한 한국의 발전상과 삶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현존하는 피사체를 찍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진 앞에 바비인형·사다리·과일 등 오브제를 하나씩 추가하며 5회 이상 촬영한 뒤 사진 표면의 광을 없애고 물감을 덧칠해 부드러운 질감을 살렸다. 강변에 사과·빈병·컵 등을 놓고 홀로 그림을 그리는 여인 〈정물〉에선 작가의 실제 모습이 느껴진다. 작가는 "내가 기본적으로 화가가 아니기에 회화에서 조형의 입체감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시기간 매일 오후 3~4시 사이에는 '작가와의 만남'(일부 시간 변동 가능)을 진행한다. (02) 724-6328

한편 서울 동숭동 샘터갤러리(02-3675-3737)에서는 작가의 '인어공주 연작' 사진 작품 20여점을 전시하는 〈LOVE〉전(展)이 22일까지 열린다. 전시에 맞춰 샘터아트북 시리즈 3권인 '김영희 러브'도 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