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인사이드] 가난… 빈혈… 디스크… 발가락염… 주먹이 울지언정 나는 울지않는다

네 살 위 언니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언니는 일하는 동안 근처 체육관에 동생을 맡겼다. 그게 지금의 거인체육관이었다. 정문호 관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놀이 삼아 샌드백을 두드리던 김주희를 정 관장이 눈여겨봤다. 일본에서 여자 복싱이 인기를 얻을 때였다. 정 관장은 한국에도 그런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김주희는 중3이던 2000년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국내 1호 여자프로 복서가 됐다. 첫 프로 데뷔전 상대는 일본 여자 격투기 선수였다.

복싱을 하면서도 돈은 계속 벌어야 했다. 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2002년 월드컵이 김주희에겐 잊고 싶은 시간이다. "이탈리아와 16강전이었을 거예요. 그날만 닭을 100마리 이상 튀겼어요. 온몸엔 덴 자국이었고요."

■근성으로 이겨내다

못 먹은 김주희는 빈혈이 심했다. 문래중학교 시절 육상부에서 활동할 때도 걸핏하면 쓰러졌다. 2002년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가니 의사가 말했다. "적혈구 수치가 일반인의 4분의 1 수준이야! 피가 아니라 물이네…."

땀 냄새가 시큼했다. 샌드백이 파열음(破裂音)을 내며 울었다. 서울 영등포구 거인체육관을 이런 풍경으로 바꿔놓은 김주희(24)가 말했다. "1년 만의 경기라 설레요." 한국 여자 프로복싱 사상 첫 복서인 그가 9월 4일 새 도전에 나선다. 상대는 필리핀의 주제스 나가와다. 그를 이기면 WIBA·WIBF·GBU 타이틀에 이어 WBF(세계복싱연맹) 라이트플라이급(48.98㎏ 이하) 챔피언 타이틀을 추가하게 된다. 4대 기구 통합 왕자(王者)가 되는 것이다.

■무서웠던 가난

초등학교 4학년 생일 아침상에 케이크가 올라왔다. "왜 엄마가 아침부터 이걸…." 소녀는 궁금해하면서도 맛있게 케이크를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저녁에 보자"고 했다. 엄마는 그날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구두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충격으로 누워버렸다. 지금은 세계적인 돌주먹이 된 소녀가 말했다. "쌀은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고요. 너무 배고파 구멍가게에서 빵도 훔치고 그랬어요. 나중에 배로 갚아 드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