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모은 옛 물건 1000여점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 한 약국의 문 앞과 건너편 길가에는 장독과 항아리, 맷돌 100여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10평쯤 되는 약국 안에는 곳곳에 수석과 작은 도자기, 동양화 같은 골동품 100여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흰 약사 가운을 입은 박영길(69)씨가 헝겊으로 정성스레 골동품을 닦으며 "약국 앞에 장독 등을 전시한 게 만 2년 됐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던 1965년 이곳에 약국을 차린 뒤 계속 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박씨가 골동품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9년 가을이었다. 박씨는 북한 출신인 40대 남성에게서 여섯 폭짜리 병풍을 받았다. 결핵에 걸린 아들에게 1년간 외상으로 약을 준 데 대해 "고맙다"며 선물한 것이다. 박씨는 "결핵이 많던 때였고 그 사람이 돈 없는 것을 아니까 그냥 약을 줬었다"며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물건이라고 해서 거절했는데 그 사람의 미안한 마음을 덜어주기 위해 병풍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병풍을 볼 때마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힘겹게 노동일을 하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박씨는 "물건 하나에도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