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인사이드] 자전거 굴리다 볼링공 굴리는 남자

박종수(43)는 한국 프로볼링의 간판이다. 2006년부터 3년 연속 랭킹포인트 2위를 했고 2006년엔 상금왕이 됐다. 한·미·일 정상급 프로가 총출동한 2010 재팬컵에선 6위에 올라 한·일을 통틀어 제일 좋은 성적을 냈다.

1m71, 60㎏,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는 요즘 다리 근력 강화를 위해 매일 3시간씩 자전거를 탄다. "한동안 자전거가 보기도 싫었는데…." 왜 자전거가 보기도 싫었을까? 볼러가 되기 전 11년간이나 자전거를 만졌기 때문이다.

■자전거와 함께 한 11년

박종수는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도련님' 소리를 듣고 자랐다. "절 챙겨주는 머슴이 있을 정도로 잘살았죠." 초등학교 5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고 어머니는 화병을 앓다 유명을 달리했다. 박종수가 13살 때의 일이다. 한순간에 무너진 집안에 어린 종수가 기댈 곳은 없었다. 그랬기에 '돈을 빨리 벌자'는 게 그의 목표가 됐다.

중학 졸업을 앞둔 설날 다음날 박종수는 인천에서 일하던 둘째 누나의 뒤를 몰래 밟았다. 무작정 서울 행(行) 기차에 올라탄 동생은 영등포역에 도착해서야 누나의 손을 잡았다. 화들짝 놀란 누나가 다시 돌아가라며 표를 끊어줬지만 박종수는 돈을 벌기 전엔 돌아갈 수 없다며 고집부렸다. 누나는 결국 자신이 알던 인천 부평구의 한 자전거 가게에 동생을 소개했다.

1년에 60만원을 받고 3년을 뼈 빠지게 일했다. 손에선 기름때가 가실 줄 몰랐고 서투르다는 이유로 맞기도 많이 맞았다. 3년 후 박종수는 자전거 도매상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6년 뒤 그는 직원 7명을 부리는 구매과장이 됐다.

연봉이 2500만원까지 올랐다. "항상 누구에게 얹혀 지내다 처음 내 방을 가진 그날을 잊을 수 없어요. 보일러도 제대로 안 들어왔지만 어쨌든 제가 제 돈으로 마련한 공간이잖아요."

■볼링으로 인생을 틀다

박종수는 술·담배는 물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자신만은 바르게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생활에 여유가 다소 생기자 박종수는 볼링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볼링 인기가 최고였어요. 회사만 끝나면 볼링장에 달려갔죠. 무미건조했던 인생에 뭔가 미쳐볼 만한 것이 생긴 거였죠."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고 재미도 있었다.

1995년 단골 볼링장 주인이 프로볼러 모집 소식을 알렸다. 한국프로볼링 1기생 선발이었다. 박종수는 미련없이 자전거 도매상을 그만뒀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어요. 이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마음먹었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에게 당장 돈이 생길 리 없었다. 신분은 비록 프로볼러였지만 박종수의 실력은 정상급 선수엔 턱없이 부족했다. 정상급 선수라도 볼링 상금으로만 생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동네 볼링장에서 아주머니들을 5년간 가르쳤고 볼링용품도 팔았다. 매일 3시간씩 신문 배달도 했다. 남는 시간엔 무조건 연습이었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굳은살을 몇 번이나 칼로 도려냈다. 어쩔 땐 피가 철철 흘렀다. 붕대를 손가락에 칭칭 동여매고 또 공을 굴렸다.

■더 큰 무대로의 꿈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박종수는 2005년 KPBA컵에서 첫 승을 따냈다. 프로 10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2006·2007년에만 5승을 쓸어 담았다. 박종수는 어느새 한국의 간판스타가 됐다.

그는 지난해 미국프로볼링 트라이얼(출전 자격을 주는 대회)에 참가했다 좌절을 맛봤다. "미국 무대는 다르더라고요. 볼링 스타일을 최근에 회전을 더 거는 미국식으로 바꾸고 있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순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