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짐 자무시의 '리미츠 오브 컨트롤'… 아름다운 영상… 킬러의 대화는 선문답

엎질러진 물의 모양을 놓고도 삶을 논할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짐 자무시의 신작 '리미츠 오브 컨트롤(The Limits of Control·12일 개봉)'은 한 편의 추상화다. 영상은 아름답고 배우들은 진지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요령부득이다. 불교적 선문답으로 가득한 이 실험영화는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당황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한 남자(이삭 드 번콜)가 공항 라운지에서 두 남자로부터 뭔가 지시를 받는다. 그들에게서 성냥갑 하나를 건네받은 이 남자는 스페인으로 가 연달아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남자는 사람들과 성냥갑을 교환하고, 성냥갑 안에는 뭔가 암호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 결국 남자는 한 미국인(빌 머레이)의 은신처까지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범죄 스릴러의 플롯을 지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여정(旅程) 속에 계속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엉뚱한 이야기를 던지는 식으로 이어진다. 그 대화는 늘 "스페인어 못하죠?" "네"로 시작된다. 음악과 영화, 과학에 대해 말하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각 제멋대로이지만, 주관적이며 자의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무로 만든 모든 악기에는 그동안 연주해 온 곡들의 울림이 스며 있다"든가, "우주에는 중심도 변방도 없다"든가, 심지어 '인생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La Vida No Vale Nada)'라는 글귀까지.

'천국보다 낯선(1984)'이나 '브로큰 플라워(2005)'같이 그나마 대중적인 영화로 팬들을 이끌어 온 자무시는 이 골치 아픈 작품에서, 영화 예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도발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이 미술관에 찾아가 감상하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추상화인 것과 미국인이 "너희 보헤미안들의 음악과 영화와 과학은 모두 엉망진창이며,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외치다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이를 방증한다. 자무시는 세계의 영화 관객들을 획일적 오락물로 잠식해 가는 할리우드의 목이라도 조를 태세다.

주인공은 카페에서 늘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한다. 웨이터가 에스프레소 더블을 갖다주자 신경질을 내며 두 잔에 각각 달라고 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게 마시는 것이 그의 취향일 뿐이다. 그리고 이 감독의 괴이한 취향은 칡뿌리처럼 오랫동안 씹어야 맛을 낸다.

[시네 업데이트] '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 9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