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두 주인공의 처절한 엔딩 결투신으로 끝나는 듯 하다 충격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영화 내내 미지의 캐릭터로만 소개됐던 백과장(김서형)에 의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백과장과 하 간호사(서효림), 그리고 두 주인공들 간의 관계 설정 등이 숱하게 봐오던 반전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답습한 듯해 아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결말은 서두에 언급했던 인간의 기억에 대한 두 연출자의 메시지를 어느정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의 일방적인 해석에 사로잡혀 옛 순간을 최악의 상황으로 기억, 상대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빠져든 민호와 상업, 결국 그들은 그 순간을 먼발치서 충격적인 사실로만 바라보던 이에 의해 최후의 결말을 맞게 된다. 욕망에 지배된 기억은 결국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스포츠조선 T-뉴스 김 용 기자] 당신에게 정말 '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다. 그를 눈 앞에서 만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와 원수의 관계가 된다는 것, 그를 죽이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그와 공유하고 있는 좋지 않은 기억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이 과연 그 때 그 순간의 사실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때 그 순간의 작의적인 해석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영화계의 젊은 두 감독이 이 문제를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바로 천호진, 유해진 주연의 영화 '죽이고 싶은'을 통해서다.
영화는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뇌졸중 환자 민호(천호진)의 병실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어느날 옆자리에 기억 상실에 전신마비가 되어 만신창이의 모습인 상업(유해진)이 들어오게 된다. 박상업. 이름을 듣는 순간 민호는 일생을 걸고 찾아 반드시 죽이고 싶었던 원수임을 확신한다. 그날 이후로 민호는 상업을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효자손, 분무기 등 2인용 병실 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상업은 충격을 받으면 받을 수록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옆에 누워있는 민호가 자신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했던 원수였던 것까지 기억해낸다. 이 때부터 이 둘의 끝없는 혈투가 시작된다.
'죽이고 싶은'의 장르는 스릴러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계속 누워있어야만 하는 전신마비 환자들이고 영화의 90% 이상은 좁은 병실을 배경으로 한다. 자칫하면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영화 전반에 스며든 '코미디' 코드다. 특히 유해진의 익살 연기는 압권이다. 민호를 보며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걸쭉한 욕설과 농담을 곁들이며 심각한 관객들에게 휴식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카리스마 배우로만 인식된 천호진의 연기 변신도 눈길을 끈다. 민호는 자살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인물이다. 모든 약도, 치료도 거부한다. 하지만 그에게 목표가 생겼다. 바로 상업을 죽이는 것. 그는 그 순간 이후로 그렇게 원하던 자살도 미루고 재활훈련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러한 코미디의 요소는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살인도구'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주인공 둘은 전신마비 환자로 자유롭게 거동을 할 수가 없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온갖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돼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스타킹 안에 비누 넣어 때리기, 환자에 연결된 전기치료기에 분무기로 물 뿌려 감전시키기, 젤리뽀 3개를 입 안에 넣어 목구멍 막기, 상대 급소에 쇠구슬 던지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적절히 조화되어 '재밌는 스릴러'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만하다.
'죽이고 싶은'은 2009년에 이미 제작을 끝마친 영화였다. 천호진의 말을 빌리자면 개봉 못하는 줄 알았던 영화가 뒤늦게 개봉한다는 데 관객들은 영화에 부족한 점이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원희 감독의 말처럼 천호진, 유해진 두 주연 배우들은 영화속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쳤다. 이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죽이고 싶은'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2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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