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惡… 내부의 惡… 김지운 감독 신작 '악마를 보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사람의 뇌수가 쏟아지고 내장이 터지는 장면 따위는 잘 보지 못한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효과도 혐오한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12일 개봉) 시사를 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비위가 상해 화장실을 들락거리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독은 심리적 공포와 물리적 공포를 적당히 배분했다. 영화 초반 최민식이 연기하는 살인마 장경철이 희생자를 가혹하게 죽일 때 비교적 상세히 묘사된 물리적 공포는 이후 조금씩 심리적 공포로 전이된다. 첫 장면에서 이미 상당한 강도의 물리적 공포를 체험한 관객은 나중에 벌어질 살인 장면에서도 비슷한 걸 예상하지만 실제로 대다수 장면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하게 되는 심리적 공포로 겁을 주는 쪽에 기울어 있다.

물론 관객의 긴장이 이완될 즈음이면 강세를 주는 무자비한 폭력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회개하지 않는 악인의 입을 찢는 것과 같은, '아가리를 찢어놓겠다'는 속어가 실감 나는 폭력 장면이 주인공의 분노에 실려 묘사된다.

감독 김지운은 연쇄 살인마와 그에게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에 매진하는 남자의 대결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친절하게도 이 영화의 주제는 영화 속 형사반장(천호진)의 말, "사람이 짐승을 상대하겠다고 짐승이 되면 되겠어?"로 설명된다. 그러면 안 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만다는 것이 '악마를 보았다'의 결론이다.

외부의 악을 단죄하기 위해 내부의 악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울 건 없는 주제지만 역시 강세는 그 묘사 방법에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김지운은 이 잔혹한 폭력을 세련된 양식미로 보여준다. 숨통을 죄어오는 공포와 짧은 순간 폭발하는 폭력,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폭력의 타성들. 살인마가 희생자의 머리를 쇳덩어리로 내리치는 장면을 보는 관객은 처음엔 신음소리를 내지만 살인마가 계속 쇳덩어리를 휘두를 때는 담담하게 보고 있게 된다. 폭력에의 내성, 적응력이 이병헌이 연기하는 주인공 수현을 괴물로 만든다. 살인마를 상대하려다 그는 살인마보다 더한 악마성을 발휘하게 된다.

'악마를 보았다'의 화면 질감은 현재까지 한국영화가 해낼 수 있는 가장 고난도의 기술적 성취에 속할 것이다. 화면 속의 빛은 명암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면서 아주 세심하게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고르게 배분돼 있다. 필름 누아르 양식미의 극점이자 선과 악의 극단적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의 주제와도 어울렸다.

살인마 장경철 역의 최민식도 그 특유의 표현주의적 연기의 극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그를 응징하는 수현 역의 이병헌은 권선징악 스토리의 주인공으로만 보인다. 많은 제작비가 든 장르 영화의 필수적인 결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크지 않다는 점이 약점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플롯이 의도한 것과는 별개로 스크린에 구현된 것이 과연 악마성의 경계에 다가섰는가는 의문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화려하고 섬세하며 심지어 안전한 범위 내에서 악마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실질적인 상영금지판정이나 다름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린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사려 깊은 배려의 결과로 컷 된 필름을 봤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관용의 그릇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사전에 밀봉돼 버린 것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