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中 갑부 뭉칫돈 몰려… 세계 미술품시장 호황

세계 미술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 이유는 무엇보다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풍부해진 유동성이 수익률을 찾아 미술 투자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세계 미술품 시장의 호황은 중국 부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세계 경매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거래액 비율은 7%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전 세계 경매 거래액의 17%를 차지했다.

◆돈이 넘쳐나는 중국의 미술품 시장

올봄 크리스티의 홍콩 경매 총액은 22억9000만 홍콩달러(약 3500억원)로, 작년 봄 경매보다 114%, 작년 가을 경매보다 39%나 늘어났다. 소더비의 올봄 홍콩 경매 총액도 20억 홍콩달러로, 작년 봄과 가을 거래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본 소(So) 크리스티 아시아 부총재는 12일 "중국의 젊은 부자들이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 귀금속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아시아 미술품 시장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빨리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부자들이 미술품 시장에 뛰어드는 건 취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투기 성격이 짙다. 중국 현대작가 웨민쥔(岳敏君·48)의 유화 '핀인'의 경우, 2005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493만 홍콩달러(약 7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2008년 5월에는 10배도 넘는 5410만 홍콩달러(약 83억원)에 팔렸다. 중국의 유명화가 쩡판즈(曾梵志·46)의 작품 '마스크'도 올봄 크리스티 경매에서 3년 전 가격의 5배(1970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잘만 하면 몇배에서 수십 배 대박이 난다는 투기 심리가 중국 부자들을 미술품 시장으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홍콩의 미술품 경매시장은 열릴 때마다 신기록 행진이다. 지난 5월 29일 크리스티 홍콩의 '아시아 동시대 미술' 세일에서는 경매작 36점이 모두 낙찰돼 낙찰률 100%를 기록했다.

중국 본토도 비슷하다. 중국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폴리 인터내셔널 옥션(PIA)의 올봄 거래액은 33억 위안(약 5600억원)을 넘었다. PIA가 올린 한 시즌 최고 거래액이다.

◆중국의 벼락부자가 주도

중국과 홍콩의 미술품 투자는 벼락부자가 된 기업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후룬(胡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0만 위안(17억원) 부자는 87만5000명, 1억 위안 부자는 5만5000명이고 이들의 평균 나이는 각각 39세와 43세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술품 구입에 나선다.

상하이에서 '선라인'이라는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류이첸(劉益謙)·왕웨이(王薇) 부부는 중국과 홍콩,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최고가 미술품만 수집하는 대표적인 '중국의 큰손'이다. 류 부부는 크리스티 옥션에선 '비비드 핑크' 다이아몬드를 8350만 홍콩달러(약 128억원)에 사들였다. 미술잡지 '아트 오브 아시아'에 따르면 이 부부가 작년에 사들인 미술품 총액만 10억 위안(약 170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한국의 미술품 경매 시장 낙찰총액(702억원)의 2배도 넘는 액수다. 이들 외에 다롄(大連)의 부동산 회사인 완다(萬達)그룹의 오너 일가, 대만의 컴퓨터 제조회사인 광다(廣達)그룹의 린바이리(林百里) 회장도 대표적인 미술품 수집광(狂)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 미술시장은 상대적으로 회복이 더디다. 토러스투자증권의 이원선 이사는 "아직도 미술품 시장이 투자처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의 성장이 더뎠다"면서 "중국과 비교해볼 때 한국의 미술 시장은 아직 저평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들은 5년 전 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1년 전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았다고 땅을 쳤다. 그런 그들이 요즘엔 현금을 싸들고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려고 혈안이다."

최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부자들의 투자 행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올 들어 중국 증시는 침체되고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제동이 걸렸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는 새 중국 부자들의 돈이 미술품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홍콩과 중국의 미술품 시장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중국과 홍콩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얼어붙었던 세계 미술품 시장도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안전자산으로 피해갔던 자금들이 최근 수익성 좋은 새 투자처를 찾아 미술품 시장으로 속속 되돌아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세계 미술시장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기업 크리스티(Christie's)는 지난 5월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을 1억640만달러(약 1180억원)에 판매,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세계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의 하나인 소더비(Sotheby's)도 지난 3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Ⅰ'을 1억430만달러에 판매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거래되는 미술품 가격을 지표로 나타낸 미술품 가격 지수(Art price index)를 보면, 2009년 4월 72.3(1990년 100 기준)에서 올해 4월 81.6으로 상승했다. 미술품 시장이 초호황을 구가하던 지난 2008년 1월(115.5)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 상반기의 바닥은 이미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