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라고 고향 그리운 줄 모를까

지난 12일 오후 일본 오사카(大阪)시립미술관 조사실. 가로 83㎝×세로 194㎝ 크기의 비단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펼치자, 화려한 보관(寶冠)에 훤히 비치는 베일을 두른 관음보살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다. 연꽃·국화무늬를 금박으로 입힌 붉은 치마, 팔에 걸쳐진 채 우아한 곡선으로 포개진 투명한 베일 자락, 단아하면서도 자애로운 얼굴…. 일본 다이산지(太山寺)가 소장하고 있는 14세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여기 정병(淨甁) 위에 꽂힌 버드나무 가지가 뻗어나가는 거 보이시죠?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감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보존 상태도 아주 뛰어납니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돋보기로 그림을 들여다보던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월관음도는 달빛 아래 보타락가산 바위 위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은 관음보살이 진리를 찾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불법(佛法)을 일깨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다는 고려불화(佛畵)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수월관음도가 오는 10월 현해탄을 건너 고국을 찾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용산 이전 재개관 5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흩어진 고려불화를 한 자리에 모으는 특별전시회를 위해서이다. 10월 12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리는 '고려불화 대전(大展)'(가칭)에는 1300년경 화승(畵僧) 혜허가 그린 수월관음도(도쿄 센소지·淺草寺 소장)를 비롯해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소장된 고려불화 68점과 중국불화 9점, 일본불화 10점 등 총 108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사상 최대 규모의 고려불화 전시로,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전하는 고려 불화는 160여점. 그 대부분이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어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6개월 전부터 일본 곳곳의 사찰을 방문해 작품을 조사하고 출품 동의를 얻었다. 13일에는 마지막으로 교토(京都) 다이토쿠지(大德寺) 교쿠린인(玉林院)을 방문해 이 사찰이 소장한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의 출품을 확정했다. 구름으로 둘러싸인 6각의 대좌(臺座)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를 그린 그림이다. 100년 전 이 사찰에 들어왔지만, 정확한 소장 경위는 전해지지 않는다. 모리 간세이(森幹盛) 주지스님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걸지 않을 정도로 귀한 그림이지만, 그림도 고향에 한 번쯤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서 한국분들에게 보여 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번 특별전은 고려불화와 같은 시기의 중국불화, 일본불화를 비교 전시하며, 정병·불상(佛像)·사경(寫經) 등 고려불화와 관련된 문화재도 함께 전시한다. 또 고려불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불교회화의 양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