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비색… 청자의 100가지 얼굴

지난 12일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고려청자 도요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청자 종(鐘) 2010개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종들이 바람에 출렁일 때마다 맑은 소리가 쏟아졌다.

천년의 비색(翡色)을 간직한 고려청자와 현대미술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강진 청자 아트 프로젝트(Celadon Art Project) 2010-강진에서 청자를 만나다〉가 지난 7일부터 강진청자박물관과 영랑생가 등 강진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강진은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청자의 80%를 생산해낸 집단 창작센터다. 전국 400여기의 옛 가마터 중 200여기가 강진에 있다. 강진군은 청자의 오랜 전통을 현대미술과 접목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강진군 이윤재 소장은 "강진에는 현대미술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이 없어 아쉬웠다"며 "강진청자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과 강진청자박물관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설치·영상·사진 등 현대미술의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화가인 김선두 교수(중앙대 한국화과)가 전시총감독을 맡았고, 고영훈·윤석남·배병우·정종미·서용선·여운·허진 등 5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은 1년 전 청자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직접 강진 전역을 돌아본 뒤 작품을 제작했다.

이들의 주요작품 100여점이 전시돼 있는 강진청자박물관과 도예문화원을 돌아보면 잔디밭에 서 있는 조각가 성동훈의 작품 〈Green(그린)〉이 눈에 들어온다.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3m 높이의 사슴 뼈대 위에 강진에서 출토한 흙으로 구운 구슬 3만개를 촘촘히 박아넣었다. 정정엽은 작품 〈씨앗〉에서 사방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나가는 녹두 알 수천 개의 실루엣을 고려청자 특유의 곡선미로 되살려냈다. 윤석남은 고려시대에 청자를 실어 날랐던 배 모형(5분의 1로 축소) 주위로 청자 고무신 200켤레를 놓았다. 윤씨는 "옛 뱃길을 따라 길 떠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강진이 고향인 소설가 김영랑(1903~ 1950)의 정신도 작품 곳곳에 스며있다. 화가 박방영은 작품 〈비색 하늘과 바다에서 시와 목민심서가 태어나다〉에 김영랑의 시(詩)를 적었고, 판화가 김억은 만덕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광을 목판화 〈다산초당〉에 새겼다.

전시의 백미는 기존에 전시돼 있던 청자 뒤로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것이다. 12세기에 제작된 '물고기무늬완'과 '앵무무늬발'이 화가 임남진의 한국화 〈여여―무위, 무위(如如―無爲, 撫慰)―나를 보고, 듣고, 말하다1〉을 만나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천년을 뛰어넘는 청자와 현대미술의 만남이 긴 여운을 남긴다. 11월 30일까지 열린다. 입장료는 5000원. (061)430-3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