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서울중앙지방법원 중앙1계. 강남 최고의 알짜 재건축단지로 꼽히는 강남구 개포동의 전용면적 36㎡(10.9평) 주공아파트가 경매에 나왔다. 이 아파트의 최초 감정가격은 3.3㎡당 6400여만원인 7억원. 그동안 주인을 찾지 못해 20%나 떨어진 5억6000만원에 입찰했지만 단 한 명도 나서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오는 10월 5일 4억4800만원에 다시 새 주인을 찾을 예정이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거래가 위축되면서 서울 강남권의 노른자위 아파트마저 경매시장에 대거 쏟아지고 있다.
17일 경매 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8월 한 달에만 5건이나 경매에 나왔다. 이 중 한 채는 지난 2일 감정가의 81% 수준인 17억원에 낙찰됐고 나머지 4채는 입찰을 앞두고 있다.
현대아파트뿐만 아니라 대치동 은마아파트, 개포동 주공아파트 등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단지들도 줄줄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은마아파트는 이달에만 2건이 경매에 나왔다. 감정가 9억2000만원인 전용면적 93㎡ 아파트는 17일 8억2051만원에 낙찰됐고, 감정가가 12억원인 아파트는 한 차례 유찰돼 오는 26일 9억6000만원에 다시 입찰에 부쳐진다.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이달에 네 건이 경매돼 한 건만 감정가의 79% 수준에서 주인을 찾았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가 경매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되는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강남권 랜드마크단지가 경매에 나오고, 2회 이상 유찰되기는 이례적이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은마, 개포 주공 등 재건축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단지들도 경매에 나오는 것은 그만큼 침체의 골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가격이 20억원을 웃도는 고가(高價) 주택은 경매시장에서도 찬밥이다. 감정가 50억원인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골드 245㎡는 42억원에도 찾는 사람이 없어 오는 10월 초 32억원에 다시 경매시장에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가 주택이 외면받는 이유를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받아 집을 사려는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감에 투자자들이 관망하는 것도 원인이다.
강남 3개구(강남·송파·서초구) 아파트가 경매에 나올 때 응찰하는 사람은 이달에 평균 3.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 초(7.1명)의 절반 수준으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이후 가장 적다. 강남 3개구 아파트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71.9%에 불과해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매 정보업체 디지털태인 이정민 팀장은 "집값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입찰가가 감정가의 80%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