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내 꿈은 車體수리 국가대표"

17일 오후 2시쯤 방학 중인 서울 노원구 하계동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에는 인적이 없었지만, 교정 뒤편 실습동에선 "키이이잉!"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했다. 실습동 1층 차체수리 실습실에서 배민국(17·에너지제어과 3년)군이 연마기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차체에 난 용접자국을 닦아냈다. 굉음 속으로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배군의 긴소매 작업복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배군은 "용접이 매끈하지 않으면 감점(減點)"이라며 "정밀하게 다듬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다"고 했다.

3.3㎡(약 1평) 남짓한 작업장 위 액자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자'는 배군의 각오가 적혀 있었다. 졸업반인 배군은 오는 9월 7일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기능대회를 앞두고 맹훈련 중이다. 6월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온종일 차체를 펴고 다듬는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아침 8시에 나와 밤 11시가 돼서야 작업실을 떠난다. 점심·저녁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작업장을 비운 적이 없다. 이 학교 이하교 교감은 "기능대회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참가한다"며 "배군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늦게 남아 연습하는 독종 학생"이라고 말했다.

전국기능대회는 실업계고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업 관문이다. 상위 3등 안에 들면 내년 런던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 전국기능대회에는 56개 종목에서 2151명이 출전한다. 배군이 출전하는 차체수리 종목에는 42명이 참가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친다. 배군이 출전하는 차체수리 종목은 공정 자체가 유난히 까다롭고 어렵다. 시험감독이 자동차 문에 8.75㎏짜리 쇠구슬을 두 번 떨어뜨려 찌그러뜨린 뒤 끝이 뾰족한 정으로 찢으면 원상태로 돌려놓는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배군이 이를 악물고 연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05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면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 아버지 병원비는 모두 빚으로 돌아왔다. 당시 중학생이던 배군은 버스 통학비를 아끼려고 1시간 넘는 길을 걸어 다녔다. 형 대한(18)군은 기숙사비를 내지 못해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형의 이름은 대한, 동생 이름은 민국이다. 배군은 "일제강점기를 사셨던 할아버지가 조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담아 형과 내 이름을 '대한'과 '민국'이라고 지으셨다"고 했다.

작년 2월 컴퓨터응용기계과를 졸업한 대한군은 작은 회사에 취직해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배군 어머니는 공부를 잘했던 대한군이 대학에 가기를 바랐지만 큰아들은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택했다. 대한군이 취직해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배군이 형을 따라 경기기계공고에 진학한 것도 기능반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국가대표가 되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배군은 "찜통 같은 반(半)지하방에서 누워만 있는 아버지를 창문으로 햇볕을 볼 수 있는 집에서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배군은 "아버지에게 올 4월에 전국기능대회 출전이 확정됐다고 했더니 말씀도 제대로 못하는 분이 겨우 돌아누우며 '잘했다, 정말 잘했다'며 환히 웃더라"면서 "국가대표가 되면 우리 아버지 건강이 더 나아지실 것 같아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배군의 실습지도를 맡은 정시근(38) 교사는 "차체분야는 강자(强者)들이 많은 종목인데 현재 배군 실력은 입상권인 3위에서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배군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는 왼쪽 손등에 난 엄지손톱만 한 물집을 보이며 "처음에는 용접하다가 실수로 여기저기 데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치지 않는다"며 "이제 남은 20여일 동안 부족한 점을 더 보강하면 된다"고 했다.

배군은 자신의 꿈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1차 목표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고 2차 목표는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치킨집 하나 차려드리는 거예요." 뜨거운 불을 다루는 용접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배군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배군이 작업장에 걸어둔 큰 액자에는 붉은 글씨로 '목표 금메달'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