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오동진의 시네투어] '악마성'을 고발하는 난폭한 영화들

잔혹한 살인 컷이 이어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생각할 겨를 없이, 영화는 지나가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최민식이 연기한 살인마 장경철이 택시를 탈취해 또 다른 범행을 생각하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장면에선 머리털이 쭈뼛 선다. 장경철은 온갖 욕을 구사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터뜨린다. 그에겐 특정 대상이 없다. 모두를 죽이고 싶은 욕망뿐이다.

장경철의 악마성은 2001년 윤종찬 감독이 만든 공포영화 '소름'의 주인공 김명민과 맥이 닿아 있다. 영화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살인범 택시기사 용현은 자신의 차를 추월하는 차를 향해 이유없는 분노를 터뜨린다. "저 ××, 확 깔아뭉갤까?"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의 주인공 장경철에 비교하면 거의 초등학생 수준이다.

'악마'의 주인공이든, '소름'의 주인공이든, 영화 속 캐릭터들이 반영하는 이 인간들을 악마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 스스로에게 내재해 있는, 말 그대로의 악마성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구조적인 무엇 때문일까. 전자라면 해법을 찾기가 복잡해진다. 후자일 경우 우리가 좀 더 이성적이기만 하면 전혀 해답이 없진 않다.

2002년 박찬욱 감독이 만든 '복수는 나의 것'은 후자 쪽이었다. 주인공 박동진(송강호)은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납치범 류(신하균)를 처단한다. 박동진은 류를 토막내기 직전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너 착한 거 안다." 하지만 박동진은 야수의 마음으로 류를 죽인다. '복수는 나의 것'은 엄청나게 정교해지고 교활해진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예전보다 조금은 더 잘살게 된) 또 다른 노동자의 얘기를 다룬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살인극의 잔혹성보다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향방에 대한 우울한 예언을 읽는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진다.

'복수는 나의 것'은 살인과 복수는 뒤로 미루고 정치사회적 이야기를 앞으로 당긴 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잔혹하지만 잔혹한 것이 전부가 아닌 작품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의 정치사회적 모순을 조금이라도 극복한다면 이런 살인의 비극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여기에선 눈 뜨고는 차마 보기 어려운 살인의 행각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살인마가 왜 이렇게 됐는지, 예전처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따위의 행위는 이제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태도다. 그럴 만하다. '복수는 나의 것'이 나온 후 약 1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터졌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납치, 강간, 살해가 다반사다. 이런 악마성을 굳이 사회 탓, 정치 탓으로 돌리기에는 해결의 시간이 너무 멀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악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그런 조급성을 적극 반영한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의 암적 존재를 다루면서 영화들이 점점 더 포악해진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현실의 얘기를 다루는 척하면서 비현실의, 판타지스러운 해결방안을 찾아 방황한다. 게다가 '악마를 보았다'의 또 다른 주인공 김수현(이병헌)처럼 우리는 갖가지 호신술을 갖춘 국정원 요원처럼 살인자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는 속수무책 당하기만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기이하게도 수퍼맨 신드롬 혹은 자경단 신드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극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묘사해 낸다.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공분으로까지 연결하지는 못한다. 영화는 종종 사회적 기능을 담보해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그러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것일까, 아닐까. 관객들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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