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는 거기까지, 사랑은 그때부터

"전에도 나는 사랑 이야기를 썼는데 아무도 그렇게 안 알아주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누가 봐도 사랑 얘기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써봤습니다."

소설가 김경욱(39)씨가 새 장편 '동화처럼'(민음사)을 냈다. 같은 상대와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하는 남녀의 연애 이야기다.

소설 제목은 '동화처럼'이지만, 소설 내용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전통적인 서사 문법을 단호히 배격한다. 대신 드러나는 것은 동화적 사랑과 대비되며 더욱더 남루해진 현실의 냄새다. 작가는 "동화에서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결혼 이후의 서사를 문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동화라는 장치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동화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지만 실은 리얼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일상과 현장에 뿌리내리는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적 변신 의지의 표현이다. 결혼 생활과 이혼 과정을 실감 나게 묘사했고, 관념적 색채가 짙었던 문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바뀌었다. 스웨덴 팝그룹 아바(ABBA), 우리나라 그룹가수 다섯 손가락이 부른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등 대중문화적 요소도 여전히 활용하는 것이 이 작품이 김경욱 소설임을 증명하지만, 인물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재로 사용할 뿐 사회적 의미나 이념을 담고 있진 않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비중이 크게 줄었다.

소설은 같은 동아리에 가입한 대학 신입생 김명제와 백장미가 각각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회인이 되어 다시 만난 둘은 서로 호감을 느끼고 결혼하지만, 결혼식장에 나타난 장미의 대학 시절 짝사랑 서정우 때문에 허무하게 갈라선다. 몇년 뒤 서정우의 결혼식장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번엔 명제가 짝사랑했던 한서영이 나타나면서 또다시 갈라선다.

소설 곳곳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동화 '개구리 왕자'는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을 가장 적확하게 담고 있다. 장미는 여드름투성이에 촌스러운 안경을 낀 대학생 명제를 무시한다. 명제 또한 장미의 까만 피부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말끔한 피부에 눈부신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 명제와 초록색 반소매 블라우스가 까무잡잡한 피부에 잘 어울리는 은행원 장미는 서로를 왕자와 공주로 생각해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동화가 허락되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둘이 처음 같이 잔 날, 침대 시트에 묻은 피를 보면서 명제는 '내가 장미의 첫 남자'라고 생각해 기뻐한다. 하지만 장미는 이미 다른 남자와 자 본 경험이 있고 그날의 피는 그저 생리혈일 뿐이었다.

소설은 이런 착각과 달콤한 상상을 깨는 동시에 남자가 여자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고, 여자가 남자의 침묵을 알아듣게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전개한다. 연애의 실상은 명제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장미의 눈치를 보며 축구 경기를 봐야 하고, 장미는 양말을 돌돌 말아 벗어던지는 명제의 버릇을 참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연애소설인 동시에 사랑의 성숙 과정을 그린 '연애성장소설'(문학평론가 강유정의 평)이다. 김경욱씨는 "이 소설을 쓰면서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내적 성장을 이뤘다"며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했거나 앞으로 사랑할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