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악마를 보았다'-'포화속으로'

한국영화가 선전하고 있다.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화제작 중 일부 장면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과연 저럴 수 있나' 혹은 '저래도 되나' 하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눈에 띈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카피는 영화에도 유효하다.

아찔한 표현 수위와 잔혹성이 화제인 '악마를 보았다'를 보자. 영화는 김수현(이병헌)이 약혼녀를 죽인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에게 처절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다.

화제성과 별개로, 영화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있다. 수현의 약혼녀의 잘린 머리가 냇가에서 발견된 순간이다. 경찰이 그 머리를 손으로 건져올려 박스에 담는다. 심지어 땅에 흘리기까지 한다. 수현은 분노에 치를 떤다. 수현의 감정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거슬린다. 굳이 수사규칙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검사에게 보고하고, 줄을 쳐서 현장을 보존하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영화가 수사 규칙이나 현행 법을 전부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식적인 규칙마저 무시된다면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

또 있다. 수현은 경철이 약혼녀를 살해한 현장에 도착한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격앙돼 있는 상태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들어서자마자, 하수구에 빠져있는 약혼녀의 반지를 발견한다.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킬레스 건이 잘리고, 송곳으로 뺨을 관통당한 경철이 뛰고 달리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수현의 휴가는 보름이다. 그는 이 기간에 경철을 찾아내고 복수한다. 경철의 행동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영화니까 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초로 학도병을 소재로 한 '포화 속으로'에도 유사한 상황이 나온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8월이다. 그런데 화면은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이다. 갈대는 노랗게 물들어 있다. 탱크는 휑한 논바닥을 지나가고, 인민군은 깃발을 높이 쳐들고 진군해 온다. 겨울에 촬영했고, 제작비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런 사정까지 감안해서 영화를 볼 이유는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카게무샤' 촬영 때는 말을 직접 기르고 조련해서 등장시켰고, '거미집의 성'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리얼한 표정과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배우 몰래 진짜 화살을 쏘았다. '천국과 지옥'의 주인공이 기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에 얽힌 일화도 유명하다. 멀리 2층집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 집을 부수고 촬영했다. 이런 철저함이 그를 세계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거장으로 만들었다.

모든 영화, 모든 감독이 구로사와 감독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구로사와의 완벽주의는 때로 불필요하거나 결벽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쓴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악마를 보았다'의 김지운 감독과 '포화 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은 곧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밑의 작은 돌멩이에도 신경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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