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2次 패싸움

〈제8보〉(91~106)=바둑만큼 정체성이 다면적(多面的)인 장르가 또 있을까. 모든 장면마다 정답이 하나뿐이라면 바둑은 학문인데, 창의적 대안(代案)이 무수히 등장할 때 보면 더없이 훌륭한 예술이다. 전국(全國)을 아우르는 화전(和戰) 갈림길에서 전략과 술수로 승부를 다툴 때의 모습은 스포츠의 속성을 빠짐없이 갖췄다. 오늘 진행은 한 판 바둑이 어떤 상담(商談) 못지않은 흥정과 타협의 과정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91때 92는 단단하긴 하지만 참고1도 1이 더 강력했다는 평. 백은 우세를 의식해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94도 그런 뜻의 타협수였다. 94로 '가'면 봉쇄는 가능한데, 흑도 참고2도 2, 4로 패(覇)를 하겠냐고 물어올 것이다. 패를 않고 잡으려면 5인데 그 후 14까지가 쌍방 최선. 이때 백16이면 빅, 잡겠다고 15에 두면 30까지 외길코스로 흑이 먼저 때리는 패가 된다.

주도권을 쥔 백이 이런 모험을 택할 이유가 없다. 95, 97로 먼저 물어본 장면에서 백은 패를 수용한다. 초반 하변에서의 접전에 이은 두 번째 패싸움이 시작됐다. 백이 106으로 패를 때려낸 장면에서 흑의 팻감은 어디에 있을까. (103…95, 10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