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걸으며 받은 감동 그림으로 나누고 싶었어요"

이 교수는 "걷다 보니 좀 더 긴 길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며 "아내를 설득해 둘이 함께 하루 6~8시간씩 꼬박 40여일을 걸었다"고 했다. 오래 걸으면서 벌레에 물리고 물집이 잡히면서 발에 염증이 생겨 병원 신세도 졌다. 이 교수는 "한번은 해가 뜰 때 끝없는 평원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를 봤는데 평소보다 10배는 긴 걸 보고 '내 키가 이렇게 커 보이기도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며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에게 '모두가 어마어마한 거인일 수 있는 우리가 위축되어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체험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풀까?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홍식(59) 교수에게는 '걷기'와 '그림 그리기'가 마음을 수양하는 두 축이다. 걷기는 10여년째, 그림 그리기는 의과대 동아리 시절부터 벌써 40년이 넘었다. 이 교수는 다음 달 8~14일 서울 관훈동 경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걷기'와 '그리기'의 행복한 만남을 공개한다. 이번이 두 번째 개인전인 전시에 출품된 유화 35점은 그가 지난 2008년 '산티아고 가는 길'을 도보로 순례하면서 그린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세파(世波)에 찌들어 괴로워하거나 생(生)을 포기하고픈 환자들을 보며 그들의 분노·원망·고통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도 우울증 걸리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환자들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의사이지만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환자들의 격한 감정들을 마음속에 쌓아두다 주변에 짜증을 내고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 이 교수가 탈출구로 찾은 것이 '걷기'였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무작정 걷다 보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집·사무실 주변과 한강 둔치, 동네 야산을 다니면서 '걷기 중독'에 빠진 그는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도 성에 차지 않았다. 2008년 8월 그는 교수생활 25년 만에 처음 얻은 안식년에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나섰다. 프랑스 국경 생장피드포르 지역부터 스페인 서북부 소도시 산티아고까지 800여㎞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