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추된 '8·8 개각'] [김태호 사퇴의 辯] "무신불립(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습니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29일 오전 자신의 임시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 로비에서 굳은 표정으로 한 쪽짜리 사퇴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21일 전 총리에 지명된 직후 처음으로 취재진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던 바로 그 장소였다.

김 후보자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는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께서 준 채찍을 달게 받겠다.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는 확실한 신념으로 백의종군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그는 청문회 과정 중 제기된 각종 의혹과 관련, "내 부족함이 너무나 많음을 깨쳤다"면서도 "억울한 면도 있다. 진솔하게 말하려 했던 것이 잘못된 기억으로, 정말 잘못된 기억으로 말실수가 되고 또 더 큰 오해를 가져오게 됐다"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김 후보자는 사퇴회견문 낭독 후 "할 말은 다했다"며 취재진의 질문에 응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날 오후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하늘에서 비를 내리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말릴 수 없다"는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을 인용한 것으로, 자신의 사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 후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지난 27일 밤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만나 "대통령이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 기조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실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며 아쉬움도 표시했다고 한다.

임 실장은 28일 이 대통령에게 김 후보자가 전달한 사퇴 의사를 보고했으며, 이 대통령은 고민 끝에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