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부부는 해병 동기, 두 아들은 海兵후배

"정확히 60년 전 오늘이지. 진해로 가는 군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 배를 타고 가면 영영 못 돌아오는 줄 알았으니까."

30일로 해병대 입대 60주년을 맞은 해병 4기 강인숙(75)씨는 1950년 8월 30일 자원입대해 고향을 떠나던 때를 회상했다. 당시 제주도 산지부두(현 제주항)에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자원입대한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뒤범벅됐다. 곱게 기른 머리를 싹둑 자르고 입대한 16세의 강씨도 거기 섞여 있었다.

강씨는 "대정중학교 3학년이던 때 나라가 위급한데 군인이 부족하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입대했다"고 했다. 당시 제주에 주둔 중이던 해병대 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제주에서만 병력 3000명이 필요했지만, 자원자가 부족하자 강씨 같은 여학생들까지도 입대시켰다. 당시 징집한 해병 3·4기 2938명 가운데 95%가 제주도 출신이었다. 4기에서 처음 입대시킨 여자 해병은 126명이었다. 같은 해 9월 5일 창설된 육군 여군보다도 빠른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군인이었다.

강씨는 "어머니에겐 걱정 말라고 했지만, 갑판 위에서 여학우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난리였다"며 "배에 타자마자 남자 학도병들은 한쪽에서 사격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강씨 같은 '어린 여해병'들은 진해 해군통제부(海軍統制府)에서 남자 해병과 똑같이 전투훈련을 받았다. 강씨는 "구보와 포복, 제식훈련 등 힘든 전투훈련을 받고, 밤에는 불침번도 섰다"며 "배식은 아주 적은 양의 밥과 콩나물국이 전부였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된 훈련을 받던 도중, 병력이 충원되자 여해병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강씨 등 40여명이 40일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해병 3·4기들은 진해에서 부산을 거쳐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강씨의 해병대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4년 강씨는 같은 해병 4기 출신인 허익호(당시 24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대정초등학교 교사였던 허씨는 강씨처럼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허씨는 인천상륙작전, 도솔산 전투 등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에 참전했다. 강씨는 "동네 사람 소개로 만나 연애하다가 같은 배로 제주를 떠났던 해병 4기 동기라는 것을 알고 더욱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부부 해병의 2남 2녀 중 두 아들도 해병대 출신이다. 장남 명우씨가 292기, 차남 태훈씨가 413기다. 명우씨는 "부모님이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보니 당연히 해병대 가는 걸로 생각했다"고 했다. 고교 3학년인 손자 재영군은 "가족이 모두 해병대인 게 자랑스럽다. 나도 대학에 가면 해병대에 지원하겠다"며 3대째 해병 가족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그러나 2년 전에야 6·25 참전유공자로 인정됐다. 군번을 통해 금방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은 남자 해병들과는 달리, 강씨와 여해병들은 어린 소녀였던 당시 받았던 군번을 기억하지 못해 자료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 사이 남편은 1994년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훈련을 받았던 해군통제부에 불이 나서 서류가 모두 불탔다"며 "병무청, 해병대사령부, 해군통제부 등에 수소문한 끝에 입대 50년 만인 2000년에야 내 군번 '91092'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번을 찾은 뒤로도 참전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는 8년이 더 걸렸다. 강씨와 여해병들은 보훈처에 진정을 내고 참전을 증명하는 사진도 보내며 백방으로 노력하고서야 겨우 참전용사 인정을 받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4년이 지나서야 6·25 참전용사로 인정받은 강씨는 "부부 해병으로서 군번이 있어야 나도 남편 앞에 떳떳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매달렸다"며 "늦게 인정받기는 했지만 기뻤다"고 했다.

강씨는 6·25 참전용사로 인정받은 뒤로 매년 빠짐없이 9월 1일 '제주 해병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강씨는 "6·25전쟁 땐 여학생들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입대했지. 국방을 남자들만의 문제라 여기지 말고 여성들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