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라운지] "딸이 왜 안뛰냐고 볶아요"

지난달 15일 KIA 윤석민의 공에 맞아 왼쪽 손등뼈에 금이 간 홍성흔(33·롯데)이 27일 깁스를 풀더니 9월 초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그는 최근 엑스레이 촬영에서 긍정적인 판단을 얻었고 스스로도 "뼈가 다 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가 다시 타격왕 경쟁에 뛰어들게 된 원동력은 뭘까. 홍성흔은 딸 이야길 꺼냈다. "지난 28일 딸 화리가 '아빠 언제 다시 야구 할 수 있어?'라고 물었어요. 제가 다친 모습을 TV에서 보고 화리가 엄청나게 울었대요."

홍성흔은 2003년 세 살 연상인 김정임씨와 결혼해 화리(5), 아들 화철(2)을 두고 있다. 그는 스스로 "가족을 위해서 야구를 한다"고 할 정도로 가족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야구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헬멧 뒤에 새겨진 'I.R.C'는 아내와 딸, 아들의 영문 이름 끝자 이니셜이다. "다치고 며칠 있다가 화리가 나를 위로해준다고 그린 그림을 봤어요. 그걸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하고, 눈물까지 나올 뻔했어요."

화리는 '홍성흔 선수 왕이다'는 글과 함께 긴 수염과 왕관을 단 사람을 그렸다. 홍성흔이 7월 말 올스타전에서 가짜 수염을 붙이고 출장한 팬 서비스를 그리면서 "아빠가 빨리 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화리는 홍성흔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다. 찜질방에 가면 무조건 야구를 봐야 한다고 채널을 돌리고 홍성흔이 나오면 "아빠 나왔다"고 소리치면서 앞으로 다가가서 꼼짝도 안 한다고 한다.

"제가 안타 칠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 놨는데, 그 스티커 책 이름이 '가족의 힘을 모으자'예요. 아이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떠오를 수 있는지…." 홍성흔이 안타를 못 친 날 집에서 혼내는 역할도 딸 몫이라고 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인자는 패자(敗者)다. 홍성흔은 2008년엔 김현수(두산), 2009년엔 박용택(LG)에 밀려 타격 2위에 머물렀다. 그가 지난해까지 따낸 타이틀은 2004년 최다 안타(165개)가 유일하다.

홍성흔이 올해 "큰물에서 놀아보겠다"며 파워를 늘린 것도 가족들에게 가장(家長)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홍성흔은 부상 전까지 타점·득점·최다 안타 1위를 달리며 동료 이대호, 한화 류현진과 MVP 경쟁을 벌였다.

부상 후 이대호에게 모두 1위를 내주고 현재 타율·타점·득점·안타·장타율 등 5개 부문 2위, 홈런과 출루율 3위를 기록 중이다. "10년 동안 계속 2등만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으로 그랬는데, 그 말이 씨가 된 것 같아요."

홍성흔은 1군 엔트리에 빠진 뒤에도 계속 팀을 따라다니며 벤치에서 동료를 응원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듯했다. "다섯 경기 정도는 뛸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슬그머니 내비친 것이다.

"타점왕은 물 건너갔고…. 타율(0.356)이 이대호와 약간 차이는 좀 있죠. 또 알아요? 제가 막판에 안타를 마구 때린다면 어떻게 될지…." 그는 딸을 위해 빨리 그라운드에 돌아가고 싶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