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기준금리 올렸는데 예금이자는 왜 떨어지나

요즘 금융시장에서 시장금리와 정책금리가 따로 노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2.0%→2.25%) 인상한 데 이어 연내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만,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인상 추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증권사의 CMA, 보험사의 저축성 보험 등의 경우, 7월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금리가 거의 제자리걸음이거나 일부 금융상품은 오히려 내렸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장금리가 따라올라가야 하는데, 지금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 이자율, 정책금리 반영 못해

은행의 정기예금이 대표적이다. 연 4.0%이던 우리은행의 1년만기 키위정기예금의 최고금리는 지난달 연 3.9%로 0.1%포인트 인하됐다. 국민은행도 연 3.7%를 주던 국민수퍼정기예금 금리를 연 3.65%로 0.05%포인트 내렸다.

증권업계도 마찬가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대표적인 수시입출금 상품인 CMA의 경우 6월 말 기준으로 연 2.4~4.5%이던 금리가 8월 말 현재 연 2.4~4.6% 수준으로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그나마 한국증권금융에 예탁해 고정이자를 주는 MMW형 CMA금리만 0.1%포인트가량 높아졌고, 단기채권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RP형 CMA상품은 금리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생명보험사의 저축성 보험상품에 적용되는 공시이율(公示利率)도 제자리걸음이다. 8월 말 현재 16개 생보사 가운데 공시이율을 올린 보험사는 AIA생명과 KDB생명 2곳뿐이고, 나머지 14개사는 공시이율을 조정하지 않았다. 그나마 상승폭도 0.05~0.1%포인트에 불과했다. 기준금리 인상폭(0.25%포인트)과는 거리가 있다.


◆풍부한 유동성이 원인

이처럼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간 불일치가 생기는 이유는 한마디로 시중 유동성이 너무 풍부하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 보니 돈 가치를 의미하는 시중금리가 하락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양적(量的) 완화 정책을 펴면서 시중에 과도한 자금이 방출됐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통화당국이 돈을 풀어도 시중에는 돈이 제대로 돌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올해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6개월~1년의 시차를 두고 이제서야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금융기관의 유동성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해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통화(M2:민간 화폐보유액+금융기관의 요구불예금+저축성 예금) 역시 9.7% 늘어 7개월 만에 증가폭이 가장 컸다.

권영선 노무라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너무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다 보니 한두 번의 기준금리 인상으로는 시장금리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채권매수로 당분간 시장금리 더 내릴 듯

국내 유동성도 풍부한데, 외국인까지 국내 채권 매수에 나서면서 시장 금리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튼실한 재정 건전성을 보유하고 있어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외국인은 53조6000억원 규모의 국내 상장채권을 순매수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순매수한 규모(53조58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한국 채권에 투자하는 나라도 미국, 유럽,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다양해졌다. 채권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따라주질 못하니까 채권값이 상승(채권금리는 하락)하는 것이다. 특히 외환보유고 다변화를 추진하는 중국이 한국 채권시장의 큰손으로 부각되면서 채권금리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금융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채권상품에 투자해서 고객들에게 수익을 지급해야 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더 높은 금리를 줄 방도가 없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전략팀장은 "시장금리가 내려갈 요인이 더 많은 상황이라 당분간은 시장금리 인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상언 신한은행 PB고객부 팀장은 "오는 9~10월쯤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 인상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어 단기로 짧게 굴리다가 금리 인상 이후에 예금 가입기간을 정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