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감독 장철수)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군더더기를 달지 않고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스토리가 신선하거나, 연출력이 돋보이거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거칠고 껄끄럽다. 그런데 영화는 꽤 흡인력이 있다. 나름대로 밀도 높은 짜임새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저력이 만만치 않다.

'김복남...'은 올 여름 유행인 잔혹 복수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다. 배경은 여섯 가구에 주민이 9명 뿐인 외딴섬 무도. 이곳에서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영화의 잔혹성은, '악마를 보았다'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수위가 꽤 높다. 낫으로 머리를 잘라 나무에 걸어놓고, 부러진 피리로 목을 찔러 죽인다. 낫이라는 살인무기가 주는 섬뜩함과 붉은 피가 화면에 흘러넘친다.

범인은 힘없는 여인 김복남(서영희)이다. 그녀는 왜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이 됐을까. 따라서 관건은 정해져 있다. 복남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 원인과 과정, 그 내면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달하느냐다. 감독은 소걸음 전략을 쓴다. 살인 행위 자체보다 그 원인에 초점을 맞춘다. 복남이 핍박받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영화에 나타난 복남의 삶은 굴욕적이다. 남편은 복남이 마루에 있는데도 창녀를 불러 안방에서 섹스하고, 결혼 생활 내내 돈 한 푼 준 적이 없다. 시동생은 남편 대신 복남을 성폭행하고,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며느리를 구박하며 일만 시킨다. 다른 주민들도 복남을 따돌린다. 복남은 외부에서 탈출의 동앗줄을 찾는다. 서울에 사는 친구 해원(지성원)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배를 타고 탈출하려다 들켜 딸이 죽는 돌발사건이 발생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다. 시간적으로는 절반이 넘는다. 감독은 "이 영화 스릴러 맞아?" 하는 생각이 들만큼 충분히 뜸을 들인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복남의 내면을 웬만큼 이해할 수 있다. 살인 방법의 잔혹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느닷없다는 느낌을 갖지는 않는다. 장철수 감독은 신인답지 않게 인내심을 발휘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살인사건은 모두 햇빛 쨍쨍한 대낮에 일어난다. 여성이 복수의 주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결국 한 많은 여성의 복수를 부도덕하고 음습한 골짜기에 가두지 않고 공개적으로 전면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친절한 금자씨'만 해도 다소 기괴하고 음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줄곧 거리감을 유지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영화는 피해 당사자인 복남의 시점이 아니다. 그랬다면 복수 과정이 좀 더 흥건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친구 해원 혹은 객관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복남의 복수는 객관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둔다.

사실 '김복남...'이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다. 일부 캐릭터는 모호하고, 사건 전개도 촘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색한 연출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장철수 감독은 스승인 김기덕 감독의 장점을 나름대로 잘 소화하고 있다. 잔가지를 쳐내고 핵심으로 곧장 치고 들어가는 뚝심이 있고, 저예산 영화 제작 비결(?)도 갖고 있다. 앞으로 개성파 감독으로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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