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제약회사 부사장서 국악 전도사로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평생학습관 지하 소강당에서 40~60대 남녀 20여 명이 장구를 앞에 놓고 꽹과리를 든 강인철(65)씨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씨가 "손에 힘을 빼고 팔을 쭉 뻗으세요. 그리고 '덩~덩~궁따구' 이렇게 가볍게 치면 됩니다"고 하자 사람들은 강씨의 꽹과리 장단에 맞춰 장구를 쳤다.

강씨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후 동네 주민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친다. 고급반 수강생들과는 해외 동포를 찾아가 공연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 호주·캐나다 등 네 나라를 다녀왔다"며 "동포들이 잊고 지내던 '우리 소리'를 일깨워 주고 외국인들에게 우리 장단을 알려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대기업 해외 지사장을 거쳐 제약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던 강씨는 50세가 되던 1995년 정년을 8년이나 앞두고 사표를 냈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세계여행을 다니며 사물놀이를 알리고 싶었는데 마침 그때가 왔다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한 달씩 여행해 75개국을 돌았다. 언제나 꽹과리와 함께였다. 강씨는 "세계 어떤 음악보다 경쾌하고 신명이 나는 사물놀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물놀이를 접하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강씨는 1994년 은퇴 준비를 하면서 대학로에서 대학생들에 끼어 본격적으로 사물놀이를 배웠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사물놀이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강씨는 가족들도 사물놀이에 동참시켰다. 그는 1990년 아내에게는 징을, 두 아들에게는 북과 장구를 가르쳤다. 이때부터 5년간 강씨 가족은 마포구 인근 노인정에서 20여 차례나 공연했다. 강씨 아내 장금호(65)씨는 "어떨 때 보면 남편은 민간 국악 전도사 같다"고 했다. 그는 "정년까지 회사에 남았으면 돈을 더 벌 수 있었고 더 많은 명예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사물놀이와 함께하는 인생도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