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沈默의 게임

〈제1보〉(1~12)=안조영은 언제 보아도 조용한 청년이다. 항상 깊은 사색(思索)에 빠져 있다. 동료와 어울릴 때도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훨씬 많다. '침묵의 승부사'로 불리는 김동엽 九단보다 더 과묵해 보인다. 사실 '수담(手談)'이란 별칭이 암시하듯 바둑은 원래 말이 필요 없는 게임이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국제대회서도 척척 복기(復棋)가 이뤄지지 않던가.

바둑의 초반전은 바둑의 그런 속성을 빼닮았다. 물론 어지러운 난전(亂戰)으로 이어지는 바둑도 많다. 거친 바둑은 인간세상사 뺨칠 만큼 살벌하다. 하지만 출발할 때의 모습은 어떤 바둑도 평화롭다. 고요한 호수에 작은 조약돌 하나씩 교대로 던져넣고, 파문(波紋)의 크기에 따라 쌍방 강온을 조절해가는 게임이다. 둘은 색시처럼 얌전한 동작으로 돌을 가리더니 흑의 1착이 소리없이 놓였다.

또다시 1, 3, 5의 '중국식' 포진. 백은 양 화점으로 맞선다. 6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펑첸, 서두르지 않고 7로 굳혔다. 참고도 1로 다가갔으면 요즘 유행하는 5까지의 변화가 이뤄졌으리라. 8역시 안조영답게 차분하다. 12 옆구리 붙임의 인기는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펑첸이 허리를 깊숙이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