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 기획팀장의 심층분석]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조용한 변화' 시도
입력 : 2010.09.06 03:25
젊은 부총재보로 세대교체, 수석 이코노미스트 도입
"변화 성공하려면 총재의 독립의지가 중요"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 외벽에는 지난 7월부터 '합의이행 일방파기 경영층은 사과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사연은 이랬다. 한은 노사는 지난해 4월 아침 출근을 30분 앞당기는 대신 퇴근시간 보장을 위해 'PC 사용 시간 관리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합의했었다. 야근 승인을 받지 않은 직원들은 PC 사용을 못하도록 해 불필요한 야근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불발되고 말았다. 지난 6월 말 시행에 들어가려다 김중수 총재의 반대로 중단됐다.
"국가 위기 상황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앙은행 직원이 정시 퇴근을 하는 것이나 저녁시간 PC 사용을 일일이 승인받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김 총재)
김 총재가 취임한 이후 직원들의 야근 횟수가 크게 늘어났다. 저녁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도 지난해보다 10~15% 정도 늘었다. 한은의 한 간부는 "총재가 요구하는 각종 보고서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 자연스럽게 야근이 늘었다"고 했다. 다른 간부는 "총재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있으니 간부들이나 직원들이 어떻게 일찍 집에 가겠느냐"고 했다.
"국가 위기 상황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앙은행 직원이 정시 퇴근을 하는 것이나 저녁시간 PC 사용을 일일이 승인받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김 총재)
김 총재가 취임한 이후 직원들의 야근 횟수가 크게 늘어났다. 저녁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도 지난해보다 10~15% 정도 늘었다. 한은의 한 간부는 "총재가 요구하는 각종 보고서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 자연스럽게 야근이 늘었다"고 했다. 다른 간부는 "총재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있으니 간부들이나 직원들이 어떻게 일찍 집에 가겠느냐"고 했다.
취임 5개월을 맞은 김중수 총재가 '조용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이 우리의 경쟁자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한은 직원들을 긴장시켰다. 국·실장 인사 시기를 석 달이나 늦춰 젊은 국장들을 부총재보로 승진시키는 등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고참 국장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 총재는 현재 외부 컨설팅업체를 통해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절간'이라 불릴 정도로 변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한은의 체질을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①한은 직원, 국제금융기구 파견 확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의 김 총재가 본 한은의 글로벌 경쟁력은 낙제점이었다. 2200명이 넘는 직원 중 박사급 인원은 100명 남짓. 그러나 이 중 외국 유수의 대학 박사 출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난 7월 중순 취임 100일을 맞아 그가 직원들에게 던진 화두는 '글로벌 경쟁력'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글로벌화 시대에 국제적 안목이 없으면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은이 외부와의 치열한 경쟁 없이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해온 측면이 크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추진한 것이 직원들의 국제금융기구 해외 파견 확대였다. 그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외국 중앙은행 총재, 국제기구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한은 직원의 '해외 근무 자리'를 부탁해왔다. 영국 중앙은행, 중국 인민은행을 비롯한 외국 중앙은행과 월드뱅크 등의 국제금융기구에 8명의 직원이 올해 안으로 나가게 됐다.
②수석 이코노미스트 도입
김 총재가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를 새로 도입하기로 한 것 역시 한은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이르면 내년 초 적임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한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한은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임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김 총재는 "가급적 국제금융기구 근무 경험이 많은 분 중에서 뽑고 싶다"고 했다. 외부 인사 영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한은은 금융위기 같은 사태가 터지면 "대응이 굼뜨다"는 말을 들어 왔다. 앞으로 주요 경제 이슈가 생기면 이런 수세적 태도를 벗어나 공세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는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김 총재의 생각이다.
③조직 개편 추진
취임 초 김 총재는 "요새 한은은 태평성대"라며 한은 일각의 무사안일 분위기를 꼬집은 바 있다. 한은은 입사(入社) 관문은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정년(만 58세)이 보장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출신의 김 총재 눈에는 한은의 이런 정체성(停滯性)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 총재가 한은 조직을 단번에 확 바꾸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어떤 변화도 내부에서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총재는 지난 6월 외부 컨설팅업체에 조직 개편 방안을 맡기기에 앞서 TF팀을 만들어 내부 의견을 모았다. 10월 중순쯤 업체가 조직 개편안을 만들면 다시 한 번 내부 수렴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대폭적인 인사와 함께 한은 조직의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결국은 '독립성 확보'가 관건
김 총재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력 때문에 취임 전부터 시장에서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됐다. "금융위기 상황인 만큼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그의 발언도 '한은 독립성 확보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근거가 됐다. 이 때문에 김 총재가 추진 중인 한은 개혁의 궁극적 목표도 글로벌 경쟁력이나 연구 역량 배양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은 독립성 확보'에 맞춰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은 중앙은행 수장이 얼마나 정부 입김으로부터 독립하느냐가 중요하고, 그런 수장의 모습이 전제돼야 한은 직원과 조직의 변화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란 얘기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의 김 총재가 본 한은의 글로벌 경쟁력은 낙제점이었다. 2200명이 넘는 직원 중 박사급 인원은 100명 남짓. 그러나 이 중 외국 유수의 대학 박사 출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난 7월 중순 취임 100일을 맞아 그가 직원들에게 던진 화두는 '글로벌 경쟁력'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글로벌화 시대에 국제적 안목이 없으면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은이 외부와의 치열한 경쟁 없이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해온 측면이 크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추진한 것이 직원들의 국제금융기구 해외 파견 확대였다. 그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외국 중앙은행 총재, 국제기구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한은 직원의 '해외 근무 자리'를 부탁해왔다. 영국 중앙은행, 중국 인민은행을 비롯한 외국 중앙은행과 월드뱅크 등의 국제금융기구에 8명의 직원이 올해 안으로 나가게 됐다.
②수석 이코노미스트 도입
김 총재가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를 새로 도입하기로 한 것 역시 한은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이르면 내년 초 적임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한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한은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임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김 총재는 "가급적 국제금융기구 근무 경험이 많은 분 중에서 뽑고 싶다"고 했다. 외부 인사 영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한은은 금융위기 같은 사태가 터지면 "대응이 굼뜨다"는 말을 들어 왔다. 앞으로 주요 경제 이슈가 생기면 이런 수세적 태도를 벗어나 공세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는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김 총재의 생각이다.
③조직 개편 추진
취임 초 김 총재는 "요새 한은은 태평성대"라며 한은 일각의 무사안일 분위기를 꼬집은 바 있다. 한은은 입사(入社) 관문은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정년(만 58세)이 보장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출신의 김 총재 눈에는 한은의 이런 정체성(停滯性)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 총재가 한은 조직을 단번에 확 바꾸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어떤 변화도 내부에서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총재는 지난 6월 외부 컨설팅업체에 조직 개편 방안을 맡기기에 앞서 TF팀을 만들어 내부 의견을 모았다. 10월 중순쯤 업체가 조직 개편안을 만들면 다시 한 번 내부 수렴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대폭적인 인사와 함께 한은 조직의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결국은 '독립성 확보'가 관건
김 총재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력 때문에 취임 전부터 시장에서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됐다. "금융위기 상황인 만큼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그의 발언도 '한은 독립성 확보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근거가 됐다. 이 때문에 김 총재가 추진 중인 한은 개혁의 궁극적 목표도 글로벌 경쟁력이나 연구 역량 배양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은 독립성 확보'에 맞춰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은 중앙은행 수장이 얼마나 정부 입김으로부터 독립하느냐가 중요하고, 그런 수장의 모습이 전제돼야 한은 직원과 조직의 변화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