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이국적 풍경에 현대美 살린 새로운 문화공간

아침저녁으로 살랑 부는 바람이 조심스레 가을을 알린다. 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 아래 서울 화랑가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한남동으로 미술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최근 몇 년 사이 한남동 오거리 부근에는 현대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류화랑, 갤러리 서화, 갤러리 비움 등이 하나 둘 둥지를 틀고 대사관길의 이국색(色)과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류화랑의 류상엽 실장은 "한남동은 다양한 외국 문화가 숨 쉬고 강남·북의 중간지점에 있어 강북 지역의 인사동이나 강남 청담동 갤러리 거리와는 달리 이국적이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감각 돋보이는 한남동 갤러리

지난 3월 멕시코대사관 앞에 문을 연 류화랑(Ryu Hwarang)은 류장현씨가 운영하는 인사동의 고미술 화랑인 '류화랑'의 2세들이 현대적인 종합미술 전시공간을 추구하며 연 곳이다. 1978년 지어진 주택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하공간을 전시실로 꾸몄다. 큐레이터 박기현씨는 "화이트큐브의 초현실적 전시공간은 마치 우리 머릿속의 상호작용을 연상시킨다"며 "감상자들이 작품에 집중하면서 각자의 내면에 있는 생각들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는 20일까지 남궁환·구명선·정지필 등의 작가가 참여한 '시대정신 2010(the spirit of the times 2010)전'을 연다. '블랙 앤 화이트'의 명료함과 세련미를 강조한 그림과 사진작품들이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02)6326-3113

1993년 청담동에서 처음 문을 연 갤러리 서화(Gallery Seohwa)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대사관 옆으로 이사했다. 복층으로 된 가정집을 나무색으로 개조해 만든 갤러리 안팎에서 고전미와 현대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서화갤러리 이유정 대표는 "청담동과 인사동의 중간 지점인 한남동이 새 둥지를 틀기에 가장 적당해 보였다"며 "미니멀 아트나 모던한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이전과는 달리, 작품의 폭을 넓혀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작가 한재현·최인선·마크퀸(Marc Quinn) 등의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매주 일요일은 쉰다. (02)546-2103

지난 2008년 3월 개관한 현대미술 전시장인 갤러리 비움(Gallery Vium)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비움'은 '비워놓을 테니 채워 달라'는 의미. 미술대 졸업생이나 신진 화가들에게 무료로 전시실을 대관해 주고,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작가들의 크로키 연습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한 대관전이 없을 때는 패션디자이너이자 서양화가인 이세일 관장의 소장품이나 본인의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쟁반이나 계란판 등에 유화 물감이 아닌 실리콘, 에폭시(epoxy·열경화성 플라스틱의 하나로 접착제·보호용 코팅 등에 사용) 등의 특이한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종이 등의 재료를 붙여 만든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오는 10월에는 판화작품들을 모아 기획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02)548-4135

◆커피 한잔의 여유 즐기며 미술관 나들이

한남동 미술관을 둘러본 후 인근 이태원과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부근의 리움미술관과 공간 해밀톤 등 전시공간들을 만나보자. 한남동의 단독주택가 곳곳에는 가을의 정취가 깃든 커피숍이나 레스토랑도 많아 한가롭게 거닐다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지난 2004년 문을 연 삼성 리움(Leeum)미술관은 삼성그룹 창립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한국의 문화재와 미술품, 한국 근·현대 작가 및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다. 'MUSEUM 1'에는 우리나라 고미술품 120여점이, 'MUSEUM 2'에는 국내외 근현대 미술품 70여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품뿐만 아니라 여유롭게 미술관 안팎을 걸으며 건물 곳곳에 숨어 있는 '디자인의 향연'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흐린 날에 잘 어울릴 듯한 거대 거미조각상, 벤치, 조명등 등 특색 있는 조형물이 개성을 뽐내고 있다. 대표 소장품은 정선의 '금강전도'와 이중섭의 '황소'. 한국작가 6명과 외국작가 5명이 참여한 2010 현대미술 기획전 '미래의 기억들전'이 내년 2월까지 열린다. (02)2014-6900

한남동 제일기획 앞 좁다란 골목길을 내려가면 빨강과 파랑의 블록으로 된 특이한 간판이 나타난다. 중고 가구점을 개조해 만든 전시공간인 공간 해밀톤(Space Hamilton)이다. 파란색 셔터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서면, 낡은 시멘트벽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배선까지 그대로 살려둔 창고 느낌의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8일까지 구로구 가리봉동에 깃든 조선족 문화를 담은 '가리봉동 진달래반점전'이 열리고, 오는 9~27일까지 다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의 기능과 역사적 배경을 재해석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블라인드 스팟 (Blind Spot)전'이 마련된다. 미술, 디자인,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콘서트나 파티도 열린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031)420-1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