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일까 테러범일까… 사실은 마릴린 먼로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는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로 8회를 맞이하는 광주비엔날레는 이번 주제를 '만인보(10000 Lives)'로 정했으며, 주제에 걸맞게 비엔날레 전시장은 이미지에 대한 해석, 비전으로 가득하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이탈리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며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을 통해 이미지와 사람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매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실에서,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디지털의 발달로 이미지가 무궁무진하게 생산·복제되고 이미지로 인한 갈등과 폭력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이번 전시 주제는 모험적이기까지 하다.

이미지 생산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예징루의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예징루는 1901년부터 60여년간 매년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기록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를 남기는 행위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닿아 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데,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영원히 살고자 한 것이다. 사람은 죽지만 이미지는 남아 후대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함이다. 이미지를 생산하던 시대와 후에 그 이미지를 보는 사람 모두 동시대인 셈이다.

안드레 데디에네스의 〈무제(마릴린이 보여주는 죽음)〉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언뜻 보기에 사형수가 수건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테러범이 얼굴을 숨기기 위해 수건으로 가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진은 마릴린 먼로가 살아 있을 당시 카메라 앞에서 장난스럽게 머리와 상반신을 담요로 뒤집어쓴 모습이다.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펼쳐지면서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티노 세갈의 작품이다. 바닥에 누운 사람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몸을 비틀고 앞뒤로 구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전시장 안내원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람객에게 "작가가 이미지 남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촬영을 엄격히 금지한다. 관람객은 영원히 사라져버릴 작품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작품에 집중한다. 〈테디 베어 프로젝트〉는 곰 인형인 테디 베어가 담긴 사진 3000장을 모든 것으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사람은 이미지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그와 관련된 사고를 확장한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면서 사진 작품이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일본 작가 신로 오타케의 〈스크랩북〉은 책으로 만든 조각 작품이다. 잡지 등에서 가져온 광고 이미지를 붙이고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새로운 의미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한시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기록성이 강한 책에 붙임으로써 유한성과 무한성이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김상길의 '오프라인 동호회' 연작은 서로 만나지는 않지만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을 담았다. 온라인에서는 서로의 취향을 함께 나누며 가족만큼 살갑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영원히 남남이다. 현실과 환상,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혼재하는 기묘한 현실을 그려냈다. 사진 외에도 조각과 회화,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됐다.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큐레이터 댄 카메론은 "다른 작품과 서로 소통하도록 배치된 작품들이 매우 아름답다"면서 "이번 비엔날레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며,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광주비엔날레에는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31개국 134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브루스 나우먼과 마이크 켈리·제프 쿤스·신디 셔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1월 7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해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입장료 3000~1만원. (062)608-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