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추석 극장가 장악한 한국영화

양적 외화 압도…그러나 완성도 아쉬움

　한국영화가 추석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다. 양적으로나 화제성으로나 외국영화를 압도한다. 반가운 일이다. '해결사'(감독 권혁재)에 이어 '그랑프리'(감독 양윤호), '퀴즈왕'(감독 장 진), '무적자'(감독 송해성), '시라노:연애조작단'(감독 김현석)이 16일 동시에 개봉한다. 장르도 다양하다. 액션, 드라마, 코미디가 고루 섞여 있다. 남자배우들의 화끈한 액션과 가슴 찡한 휴먼 스토리, 웃음을 자아내는 로맨스와 좌충우돌 코미디 중에서 골라서 볼 수 있다. 문제는 완성도다. 몇몇 영화는, 꼼꼼히 따져보지 않아도 허술한 면이 금방 눈에 띈다. 자칫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퀴즈왕'은 코미디 고수인 장 진, 김수로가 호흡을 맞춘 영화다. 류승용, 한재석의 연기 변신도 눈에 띈다. 4중추돌 교통사고를 당한 인물들이 우여곡절 끝에 133억원이 걸린 퀴즈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겨룬다는 얘기다. 영화는 공간 활용이 돋보인다. 인물들이 파출소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좁은 공간에서 10여명의 인물들이 교통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벌이는 설전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톡톡 튀는 대사, 배우들의 동선 등 연극무대에서 쌓은 내공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이 퀴즈대회를 준비하는 장면부터 흐름이 완전히 바뀐다. 인물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소개되면서 웃음이 사라진다. 휴먼 드라마로 변하고, 퀴즈 프로의 비리까지 비중있게 등장한다. 웃음, 휴머니즘, 비리 고발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게다가 캐릭터도, 스토리도, 장르도 정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해결사'도 비슷한 우를 범한다. 주인공은 전직 경찰로 흥신소를 운영하는 강태식(설경구). 그는 절친한 후배 형사 장필호(이정진)의 계략에 말려들어 위험에 처한다. 태식은 온갖 고난을 겪는다. 기어이 사건을 해결하고 딸을 구한다. 그 과정에서 역동적인 액션이 펼쳐진다. 형사 역의 오달수, 송새벽의 코믹연기는 양념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대통령 선거나 IMF 당시의 은행매각 비리 등 국가적 대사가 배경으로 깔린다. 장필호는 정치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정당의 여성 대변인과 검은 거래를 한다. 태식은 그 틈바구니에 낀 상태에서 거대한 음모를 부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애용하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태식은 해결사가 아니라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어정쩡한 멜로라인까지 등장한다. 설계도는 웅장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마무리하지 못한 건물을 보는 듯하다. '그랑프리' 역시 입체성을 찾기 힘든 캐릭터와 단조로운 전개로 흡인력을 상실한다, 제주 4ㆍ3 사건이나 박근형의 사랑고백과 같은 뜬금없는 내용, 제주경마장인지 서울경마장인지 구별되지 않는 리얼리티의 부재도 거슬린다.

시나리오 입문서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점이 있다. '결말을 정하고 쓰라'고 조언한다. 중간에 옆길로 새지 말라는 의미다. 관객들이 어떤 영화가 궁금할 때 '무슨 얘기냐'고 묻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올 추석 개봉영화들은 비슷한 단점을 노출한다. 불필요한 혹은 흐름과 동떨어진 전개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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