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양 할아버지(신양문화재단 정석규 이사장)'에 작은 報恩

13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대형 모자이크 초상화를 만들고 있었다. 가로 1.4m, 세로 2m의 합판 위에 그림을 그린 작은 합판(10㎝×10㎝) 280개를 붙이는 작업이다. 이날부터 3일 동안 학생 280명이 한 조각씩 부분 그림을 그려서 대형 합판에 붙여 완성하게 된다.

그림 속 인물은 '서울대 기부왕 할아버지'인 정석규(81·화공과 48학번) 신양(信陽)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초상화는 오는 30일 서울대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리는 '신양 할아버지를 위한 이벤트' 때 정 이사장에게 전달될 선물 중 하나다.

정 이사장은 1987년 1000만원을 시작으로 모교 서울대에 100여 차례에 걸쳐 모두 133억원을 기부했다. 그의 호(號·신양)를 붙인 건물 '신양학술정보관'만 3개(공대·인문대·사회대)나 지어졌다. 1999~2009년 학생 162명이 412회에 걸쳐 6억4000만원의 장학 혜택을 받았다. 이런 그를 학생들은 '신양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이 이벤트를 석 달째 준비해왔다. 정 이사장의 화공과 후배인 문주용(25·화학생물공학부 석사과정)씨가 지난 7월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문씨는 후배들을 위해 많은 기부를 해온 정 이사장이 낡은 양복을 입고 동문회 행사에 나타난 일화를 소개하며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누리며 지냈지만 정작 우리가 해 드린 건 아무것도 없다. 학생들이 나서 보자"고 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300회가 넘는 조회수에 7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서울대생 10여 명이 지난 7월 14일 첫 회의를 가졌다. "새 양복과 구두를 선물해 드리자", "돈을 거둬 동상을 제작하자"는 등 의견이 쏟아졌다. 토론 끝에 학생들은 신양 할아버지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모아 주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온라인 모금에 390명이 참여해 금세 1000만원을 모았다. 1000원부터 20만원까지 정성껏 모인 돈은 서울대생들이 운영하는 지역 공부방 2곳과 관악구의 여러 사회복지관에서 추천한 중·고교생 15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행사를 허락받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정 이사장이 "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항상 궁금하다"고 하자, 학생들은 '신양 장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신양의 장학금을 받은 재학생과 졸업생 4명은 행사일인 30일 신양에게 보여줄 영상편지를 만들었다.

재능을 보탠 학생들도 있다. 미대 신현주(22·조소과 3년)씨는 '대형 모자이크 초상화' 작업을 담당했고, UCC대회 수상경력을 지닌 이기단(20·재료공학부 2년)씨는 '신양 장학생'들의 영상 편지를 편집했다. 이씨는 "공대 신양관에 있는 동아리방을 쓰고 있는데 평소 감사하는 마음만 갖고 있다가 학생들이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호정(22·소비자아동학부 4년)씨는 "미술 실력을 최대한 살려 신양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그렸다"며 "평소 인문·사회대 신양관을 자주 이용하며 감사하게 생각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측도 "너무나 대견하다"며 발전기금을 통해 현수막·포스터 등 홍보비 200만원을 지원했다. 평소라면 불가능한 '목 좋은 곳'에 현수막을 걸도록 허락했다. 학생들이 만든 홍보 내레이션을 학교 셔틀버스 안에서 방송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오는 30일 오후 4시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신양 할아버지'가 특강을 한다. 후두암 수술로 목 부위에 구멍을 뚫어 말하기 힘겨운 그여서 이벤트 추진위 학생들 중 한 명이 대독(代讀)하게 된다.

정 이사장은 "지난 10년 동안 모교 학생들을 위해 베푼 봉사의 씨앗이 열매가 되고, 이것이 다시 학생들 봉사의 씨앗이 됐다니 감사할 따름"이라며 자기 초상화를 그리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