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52개월 만에 入神을 노리다

바둑의 최고 품계는 입신(入神)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九단이다. 10년 전만 해도 단위는 연륜의 척도였지만 요즘 九단의 권위는 꽤 높아졌다. 새 천년 진입 후 동양 3개국이 단위와 실적을 경쟁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요즘 '젊은 九단', '초스피드 九단'은 천재의 상징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九단이 된 기사는 중국 천야오예(陳耀燁·21)다. 17세6개월 만에 달성했다. 세계대회서 우승 1회 또는 준우승 2회를 거두면 九단을 인정하는 중국 규정에 따른 것. 천야오예는 2006년 제10회 LG배, 2007년 제19회 TV아시아선수권서 잇달아 준우승했었다.

하지만 프로 입문 후 최단 코스 九단 등정 기록 보유자는 한국의 박영훈(25)이다. 99년 입단한 그는 六단 시절이던 2004년 제17회 후지쓰배 우승으로 단숨에 九단으로 건너뛰었다. 한국은 세계대회 우승시 3계단, 국내 1~3위 기전 우승 경우 2계단, 세계 및 국내 1~3위 기전 준우승과 국내 4위 이하 기전 우승시 1계단 승단을 허용하고 있다.

이창호(35)와 이세돌(27)은 입단 후 8년 이상이 지난 뒤 20세를 넘겨 九단이 됐다. 한국기원의 성적 연동 승단 규정이 2003년에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86년 입단한 이창호는 오직 승단대회만을 통해 94년 七단까지 올랐고 96년 한국기원의 특별 조치에 의해 九단에 도달했다.

이세돌은 2003년 3월 三단에서 六단(제7회 LG배 우승)으로, 5월엔 七단(제2기 KT배 준우승), 다시 7월 九단(제16회 후지쓰배 우승)에 올라 같은 해 6계단 점프라는 신화를 남겼다. 95년 입단 후 二단이 되기까지 3년이나 걸렸던 기사라곤 믿어지지 않는 초스피드. 이세돌은 단위에 따른 실익이 전혀 없던 저단자 시절 승단대회에 거의 출전하지 않거나 상당수 대국을 기권해 단위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승단제도를 개혁, 이야마(井山裕太·21)란 젊은 '입신'을 탄생시켰다. 2005년 四단에서 七단으로, 2009년 九단으로 '고속 승단'이 가능했던 것도 사상 최연소 명인 등극 등 눈부신 성적이 새 승단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박영훈의 최단기간, 천야오예의 최연소 九단 기록은 영원할까. 물론 그럴 순 없다. 젊은 천재가 출현해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현재는 한국의 17세 소년 박정환 八단이 그 가능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

93년 1월에 태어나 2006년 5월 입단한 박정환의 승단 속도는 경이적이다. 2008년 三단에 오르기까지는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가다 2009년 四단(제4기 십단전 우승)과 五단(천원전 우승)을 거쳐 2010년 1월 七단(제5기 십단전 우승)이 됐다. 지난 5월엔 승단대회 점수에 의해 八단으로 올라섰다.

박정환은 9월 현재 17세8개월로 아쉽게도 중국 천야오예가 보유 중인 최연소 입신기록 경신은 이미 물 건너갔다. 대신 박영훈이 보유한 세계 최단기간 입신 기록은 아직 사정권 내에 있다. 대략 3개월 안에 한 단만 더 올라서면 신기록이 만들어진다.

박정환이 1계단을 더 올라서려면 우승 또는 메이저급 기전 준우승을 추가해야 한다. 그가 8강에 진출해있는 KT배는 10월 하순, 지난주 시작된 삼성화재배는 12월 10일 결승전이 예정돼 있는데 둘 중 한 군데만 결승에 나가도 새 '세계 최단코스 九단'이 탄생한다. 박정환이 갖고 있는 십단과 천원전 본선은 연말 또는 새해 초쯤 결승전이 열릴 전망. 이 밖에 바둑왕전서도 승자 8강에 올라 있다. 신기록 수립을 눈앞에 둔 박정환은 뜻밖에도 "기록 자체는 목표가 아니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타이틀을 따다 보면 기록도 따라오지 않느냐는 것. 하지만 이 17세 소년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올 연말까지 국내외 바둑계의 집중적인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