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과 매듭으로 엮은 세계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미국 작가 사라 모리스(Sarah Morris)는 회화와 영상을 오가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왔다.

작가가 회화 작품에서 보여주는 절제된 선(線)과 화려한 색상 속에는 도시의 이면(裏面)이 도사리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링(Rings)〉은 올림픽을 앞두고 도로 건설과 도시 재개발을 서둘러온 중국의 속사정을 은유적으로 그렸다. 절도 있고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선이 무한한 번영을 약속할 것 같지만, 고속성장의 어둠을 예고한다. 모리스는 더 나아가 단순해 보이는 것들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 제시한다.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 등을 그린 '도시 시리즈'가 그것이다. 도시를 상징하는 지하철이나 대형 건축물을 통해 그 사회의 복잡한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기세 좋게 뻗어나가는 직선을 통해 도시의 역동성과 함께 몰(沒)개성화도 드러낸다.

이번 서울 전시의 부제는 〈Clips and knots(클립과 매듭)〉로, 모리스가 최근에 그린 클립과 매듭 시리즈가 나온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작가는 "각국에서 만들어내는 클립과 매듭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해 저마다 형태가 다르다"면서 "클립이나 매듭은 서로 다른 것을 이어주지만 언제든 풀릴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해 보이는 클립이지만 매듭을 이루는 순간 새로운 변형이 생겨난다. 마치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모리스의 영상 작품 〈1972〉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수석심리학자로 활동한 게오르그 지버 박사를 인터뷰한 것이다. 뮌헨 올림픽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삼았으며 구출 작전 도중 인질 전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지버 박사는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이스라엘 선수단 피습이었다. 작가는 영상을 통해 '잠재된 실패'에 대해 말한다.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대비책을 세웠어도 결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 사건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실패'를 보여준다.

사라 모리스는 개인전과 함께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에 영상 작품 〈베이징〉을 출품했다. 갤러리 현대에 전시 중인 회화 〈링〉과 영상 작품 〈베이징〉을 비교하며 의미를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전시는 26일까지 열린다.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