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탄자니아인 가슴에 묻힌 한국청년
입력 : 2010.09.16 02:57
서울대 건축학과 故이용준씨
아이들 학교 설계해주던 한국건축학도가 익사했다
청년부모가 火葬하려 하자 마을 부족장이 말렸다
"그는 제게도 가족입니다… 마을 중심지에 그를 묻어 오갈때마다 보고 싶습니다"
용준씨는 지난 7월 15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지역 보마 응옴베(Boma Ngombe)에 지을 학교 설계도를 완성하기 위해 출국했다. 용준씨는 교실 15개에 학생 600여명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책 1만5000권을 갖춘 도서관이 있는 중·고등학교 조감도를 만들고 있었다. 용준씨는 동아리 후배 김모(19)씨와 탄자니아로 들어가 탕가 등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어떤 건물이 적합한지 연구했다. 탄자니아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는 "용준이는 설계를 위해 수많은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고 했다.
용준씨 일행은 지난달 20일 탄자니아 북동부 탕가 지역 바닷가에 들렀다. 잠시 머물다 모두 떠날 채비를 하는데 용준씨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용준씨는 숨이 멎은 채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 이씨는 "그 지역이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곳이라 들었다. 갑자기 온도가 다른 바닷물이 교차하면서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용준씨는 2006년 대학 입학 후 첫 여름방학 때 탄자니아에 간 뒤 네 번이나 탄자니아에 갔다. 선교 동아리에 들었던 용준씨는 탄자니아에서 우물 파기, 태양광 발전판 설치, 유치원생 교육 같은 봉사활동을 했고, 초등학교 식당 건물을 설계하기도 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국한 이씨 부부와 용준씨의 세 동생은 지난달 22일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지역 유지 카문둘리 올레 시망가(Kamunduli Ole Simanga)씨, 요하나(Yohana)씨가 가족을 맞았다. 시망가씨는 자신을 '바바용준(용준의 아버지란 뜻)'이라고 소개했고 요하나씨는 용준씨와 의형제였다고 했다. 이들은 용준씨가 소똥으로 지은 집에서 마사이족들과 함께 먹고 자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이씨 부부는 용준씨 장례를 한국에서 치르려 했다가, 아들이 탄자니아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는 용준씨를 화장해 반을 탄자니아에, 나머지 반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바바용준은 "화장을 하면 당신들은 다음 생(生)에 아들을 만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또 바바용준은 "가족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자주 봐야 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용준씨는 보마 응옴베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엔카타니 마을 유치원과 병원 예정 부지 사이에 묻혔다. 24일 용준씨가 설계한 초등학교 식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졌고, 이 자리에는 200여명의 현지인이 모여 용준씨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바바용준은 떠나는 용준씨 아버지에게 부족장의 상징인 노란 막대를 쥐여주며, "당신이 다음에 아들을 보러 탄자니아에 오면 막대를 든 당신을 보고 이곳 사람들이 잘 대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지난 4일 충남 천안 미래로교회에서 추모식을 치렀다.
서울대 건축학과 박소현 교수는 "용준이는 보통 학생들보다 열정적이고 개성이 강한 학생이었다"면서 "크게 기대되던 학생이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동양사학을 부전공했던 이씨는 수·당 시대의 수도 장안성에서의 불교사원이 도시계획에 미친 영향이란 주제의 논문을 동양사학과에 제출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한제 교수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던 논문이었다"면서 "이군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가니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또 용준씨는 무슨 음악이든 들으면 바로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이씨는 "원래 몸이 약했던 용준이는 탄자니아 가기 전부터 많이 피곤해 했다. 두 달 동안 동양사학과 논문도 썼고…. 아들은 치열하게 원 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어머니 임씨는 "아들은 어릴 때 역사책에서 봤던 고건축물을 그리곤 했다. 나무 장난감 쌓아올리는 걸 좋아했지. 살아있었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