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앞바다, 예술로 물들다

15일 오후 7시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끼고 있는 바다에 설치된 방류제(防流堤). 옅은 해무(海霧) 속에 해가 떨어지자, 제방 위에 세워진 가로 5m, 세로 2m의 대형스크린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비디오 작품 〈지·수·화·풍〉이 대형스크린에 펼쳐진 것이다. 1136m에 이르는 긴 방류제에 세워진 6개의 스크린에 작가가 스페인·과테말라·그린란드에서 촬영한 바다·화산지대·하늘·빙하의 이미지가 상영됐다.

지난 3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원전(原電) 아트 프로젝트' 첫 전시였다. '원전 아트 프로젝트'는 원자력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차세대 에너지원일뿐 아니라, 한국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미술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달이 떠오르자 비디오 작품은 어둠 속에서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영광의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스크린에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파도의 이미지가 비교되면서 2개의 현실이 공존하는 느낌을 줬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했던 김수자는 뉴욕과 유럽을 오가며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 '바늘여인'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바늘여인' 시리즈를 통해 갈라진 것을 이어주고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수자는 〈지·수·화·풍〉에서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최은주 팀장은 "자연을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만나고 결합하면서 생성과 변화, 소멸을 이룬다는 의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파괴와 생성을 동시에 상징하는 원자력발전소라는 장소에서 보여지는 김수자의 작품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뒤돌아보게 한다.

이날 관람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배순훈 관장, 한국을 방문 중인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리처드 암스트롱 관장과 큐레이터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원전 아트 프로젝트'는 광주비엔날레에 맞춰 기획됐고, 작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다니엘 번바움을 비롯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큐레이터 댄 카메론 등이 찾았다. 리처드 암스트롱 관장은 "작품과 바다가 모두 아름답다"면서 "자연과 과학, 예술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배순훈 관장은 "2012년 울진과 월성, 고리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의 원전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해볼 생각"이라며 "일본의 나오시마 프로젝트처럼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미술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9일까지 이어진다. 영광 원전은 산업보호 시설이기 때문에 방류제에서 근접 관람을 원하는 사람은 인터넷 신청을 거쳐 관람(매일 50명 선착순)할 수 있다. nppa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