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이대로는 한국 안 돌아간다"

상처 입은 '국민 타자'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14일 일본 도쿄 근교 이나기(稻城)시 요미우리랜드의 자이언츠 2군 경기장. 게임에 앞서 훈련을 마친 이승엽(34)은 기자를 보곤 "어쩐 일이냐"며 반갑게 맞았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하자 이승엽이 말했다. "절에서 도 닦고 있어 그런가 봅니다." 해탈(解脫)이라도 한 것 같은 그가 다시 말했다. "이젠 스트레스 쌓이는 단계는 넘어선 것 같아요. 속이야 쓰리지만 웃어야지 어쩌겠습니까?"

이달 초 1군 복귀 3일 만에 다시 2군으로 강등됐던 이승엽은 "남 보기 창피했겠다"는 기자의 말에 "쪽팔리기만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승엽은 요즘 한국에서 자신이 갑자기 뉴스의 중심이 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 복귀는 절대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앞서 가더라고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요미우리와는 끝났다는 둥, 짐 싸는 일만 남았다는 둥 이상한 기사가 너무 많이 나와 더 머리가 아픕니다."

그는 "난 한 번도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 갈 데가 어디 있느냐"며 반문하더니 "삼성 구단 측에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 난 돌아갈 뜻이 전혀 없다"고 했다.

최근 "이승엽이 돌아온다 해도 자리가 없다"는 선동열 감독의 발언과 삼성 복귀 땐 연봉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추측 기사들에 대해 다분히 감정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승엽은 "아직 나는 요미우리 선수"라며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지금은 이 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포스트 시즌 경기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출전하는 것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일단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안 부를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미련이 잔뜩 묻어나는 말이었다. 요미우리와의 4년 계약이 끝나는 올 시즌 후 이적 문제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이승엽은 "대리인이 잘할 것으로 믿는다"며 "나는 몸만 잘 만들고 준비만 잘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순 없습니다. 명예회복 해야죠." 이승엽은 연봉 문제에 대해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며 "칼을 갈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생활 속에 칼을 간다

이승엽은 요즘 정말 건실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 "아침 7시 40분에 집에서 나와 저녁 7시쯤 귀가합니다. 집과 운동장만 왔다 갔다 하죠.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춘광씨와의 전화통화도 뜸하다는 그는 "아버지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말씀드렸다"며 웃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부모에게도 내색하기 싫은 듯했다.

이승엽은 "이제 운동만 하는 게 거의 생활이 됐다"며 "그 덕분인지 몸 상태는 아주 좋다. 고질인 허리 통증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분들도 거의 못 봤어요. 7월인가 한 분 왔는데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래도 기사를 잘 만드시더라고요. 떨어지는 포크볼 대처법을 연마한다면서."

이승엽은 좋지 못한 성적에도 한국 팬들이 여전히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고맙다면서 "프로가 성적으로 말해야 하는 데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올해 외아들 은혁(5)이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형'이 됐다. "애 엄마(이송정씨)가 얼마나 아이를 철저히 관리하는지 몰라요.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게 하죠. 정말 다른 사람 같다니까요." 이승엽은 "같은 학교의 한국인 학부모들과 가끔 모임을 갖기도 한다"며 보통 남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김태균과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는 이승엽은 "올겨울 결혼하는 후배에게 조언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내가 무슨 말을 해주겠느냐. 오히려 내가 조언을 들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좋지 못한 자기 성적에 대한 자책감이 물씬 느껴졌다. 그래도 이승엽은 여전히 한국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았다. 오는 19일 은퇴경기를 하는 삼성의 선배 양준혁 이야기를 꺼내며 "너무 아쉽다"고 했다.

"2500안타를 코앞에 두고 그만둬야 한다니 얼마나 아쉽겠어요. 타격만큼은 정말 뛰어난 선배였는데. 또 한 명의 신(神)이 사라지네요." 이승엽은 "복귀설 때문에 조금 서운했지만 여전히 나는 삼성 맨"이라며 "젊은 후배들이 아주 잘하던데 삼성이 올해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찬반토론] 이승엽 선수, 명예회복 vs 국내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