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고전적 추리소설의 피날레는 대개 이렇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맡은 탐정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한곳으로 부른다. 대개 그 가운데 범인이 포함돼 있다. 탐정은 사건의 전 과정을 브리핑하고는, 마침내 '범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한 명에게 손가락을 겨눈다. 완전범죄를 꿈꿨다 들통난 범인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쥐덫' '오리엔탈특급 살인사건'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찬사받았지만 '인간을 너무 악한 존재로 본다'는 비판도 들었다. 앞서 언급한 피날레 신에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주인공들은 이런 말을 즐겨했다. "이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군지 생각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유산을 상속받거나 거액의 보험금을 타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뒷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살인의 동기는 결국 금전적 이유이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돈 때문에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사악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크리스티는 이런 패턴을 거의 '공식'처럼 사용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성악설에 빠져있느냐, 인간의 밝은 측면도 좀 보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고전적 대가들이 이렇게 금전적 이익이나 원한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다. 더욱이 살인같은 엄청난 죄악을 저지를 때는 반드시 이유가 없을 수 없다. 결과에서 원인을 역으로 추적해가는 과정, 그게 바로 추리이고, 그래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성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면서 이런 추리의 기능이 상당히 무색해지고 있다. 특별한 동기가 없는 범죄, 바로 '묻지마 범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영화와 드라마 등 각종 범죄 드라마에 점점 비중있게 반영되고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이병헌 주연의 '악마를 보았다'나 '추격자' 역시 이런 맥락에 있는 듯 하다.
광기에 사로 잡힌 살인마, 연쇄 살인범은 이제 현실과 드라마에서 모두 주인공이 돼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묻지마식 행각에 대한 응징 또한 묻지마식이다. 1차 폭력은 정당화된 2차 폭력을 부르고 화면엔 피가 팍팍 튄다. 크리스티가 들었던 비판은 지금 생각해보면 순박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자연스럽게 그 옛날 탐정과 형사들이 했던 추리의 기능은 이제 CCTV나 휴대폰 통화내역 조회, 유전자 검식 등이 대신하고 있다. 범죄가 예전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두뇌게임이었다면, 이제는 광기 대 과학의 대결로 '진화'하고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짜릿한 추리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줄어드는 건 아쉽지만 '드라마는 현실의 모방'이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다른 모든게 바뀌어도 한가지 사실만은 변함 이 없어야 한다. 셜록 홈즈나 엘큘 포와로 같은 탐정이 믿었듯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명제 말이다. 나쁜 짓을 저지른 자는 어찌됐건 죄값을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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