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시네마] '아저씨' 이정범 감독 "원빈 노출신, 일부러 길게 갔죠"

" 기분 좋다. 그런데 500만 명이 넘어가면서 부담이 생겼다. 지금 스코어가 차기작의 기준으로 작용할 게 아니겠는가." <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39)은 다음 작품 흥행에 대한 걱정부터 했다. < 아저씨>는 지난 주말 555만 명을 돌파, < 의형제>(546만 명)를 제치고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현재도 꾸준히 관객이 들고 있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 인셉션>을 제치고 올 개봉작 전체 1위에 올라서는 것도 시간문제다.

< 아저씨>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깊은 상처를 숨긴 채 전당포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태식이 조폭에 납치된 옆집 소녀 소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얘기다. 이 감독은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봤다. 2주 전 심야에 주인공 원빈과 동행했다. 이 감독은 "후반에 몰아치는 힘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원빈의 반응은 어땠을까. 평소 감정표현 안 하기로 유명한 원빈도 "멋있어요" 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 아저씨>는 이 감독에게나 원빈에게나 매우 중요한 영화다.

이 감독은 2006년 < 열혈남아>로 데뷔했다. 삼류 깡패의 내면에 숨겨진 순수한 감성과 인간애를 담아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15회 춘사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 열혈남아>를 본 것은 67만 명이 전부였다. < 아저씨>를 통해 제대로 명예회복을 했다. "한국 액션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다.

원빈도 마찬가지다. 꽃미남 스타의 대명사였지만, 연기력에 있어서는 늘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이미지도 한정돼 있었다. TV드라마에서는 멜로 연기를 주로 선보였다. 영화에서도 유약한 이미지였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 태극기 휘날리며>나 < 마더>에서도 보호받는 아우, 모성애를 자극하는 캐릭터였다. < 아저씨>에서는 180도 달라졌다. 원톱 주연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이는 이 감독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 아저씨>의 흥행 요인으로 "남성미와 액션영화에 대한 원빈의 갈망을 끌어냈다"는 점을 첫손에 꼽았다. 실제로 원빈은 내면에 숨어있던 액션 본능과 남성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원빈의 재발견'인 셈이다. 이 감독은 "< 마더> 때만 해도 원빈이 여성 관객에게 파워가 있는 줄 몰랐다. < 아저씨>를 찍으면서 인기가 좋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꽃미남 스타가 아닌 배우 원빈의 '숨어있는 1인치'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결국 < 아저씨>는 원빈의 연기변신 욕구와 이 감독의 연출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얻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태식의 과묵한 캐릭터와 원빈의 진중한 성격이 조화를 이룬 점도 있다.

물론 원빈의 스타성도 활용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미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 원빈은 상체를 노출하고 식스팩 근육을 꽤 오래 보여준다. 원빈이 상체를 노출한 것은 처음이다. 이 감독은 "일부러 길게 갔다"고 말했다. 블랙수트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팬 서비스이자 상업적인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 아저씨>의 흥행을 원빈의 액션 연기나 이미지 변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영화가 뿜어내는 '직선적인 힘'도 무시할 수 없다. < 아저씨>는 스토리가 옆길로 새지 않고 결말을 향해 외길로 뻗어간다.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다. 이 감독은 "혼자 숨어살던 상처투성이 옆집 아저씨가 놀라운 능력으로 범죄집단을 초토화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빈의 아름다움, 원빈과 아이의 교감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식이 우여곡절 끝에 소미를 구해냈는데도 짠하거나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다. 둘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나타내는 에피소드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이 감독은 "인정한다. < 열혈남아>가 더 좋다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왜 그랬을까. "끈끈한 정을 끄집어내기보다 빠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뒷부분에 액션을 집중 배치해 몰아치기로 승부했다"고 설명했다. 강치곤과 태식의 드라마도 속도를 위해 희생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성공했다. 이 감독은 "만약 원빈이 아니라 최민식이 주연이었면, 태식과 소미의 정서를 강화해 징글징글하고 먹먹한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아저씨>에서 시작돼 < 악마를 보았다>,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이어진 잔혹 복수극의 유행에 대해서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자극적이고 잔혹한 소재는 한국영화의 기본 줄기가 아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 아저씨>는 폭력 장면이 아니라 장기 밀매, 아동 학대와 같은 설정이 잔혹하다"면서 "작품의 완결성을 위한 폭력성은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 아저씨>가 청소년 관람불가인 것도 이런 지론과 관련이 있다. 잔혹성의 수위를 낮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완결성이 먼저였다. 장기 밀매, 마약 제조, 노동 착취 등은 15세 관람가 정서가 아니었지만, 태식의 분노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설정이었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로 생각했다. 그 점을 10% 정도 후회한다. 15세 관람가로 했으면 1000만 관객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농담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영화가 안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 아저씨>로 흥행감독이 됐지만, '시네마 키드'는 아니다. 학창시절 < 다이 하드>나 < 리셀 웨폰> 같은 할리우드 액션영화, 홍콩 느와르를 많이 봤다. 그냥 즐기는 수준이었다. 군 시절 도서관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당시 송길한 작가의 < 짝코>에 매혹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 감독은 "송길한 선생님은 내 은사이자 멘토"라고 말했다.(*< 짝코 >는 빨치산과 전투경찰의 30년에 걸친 추적과 도주, 증오와 화해를 그린 영화다. 두 사람이 쫓고 쫓기다가 늙은 행려병자가 되어 갱생원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김희라 최윤석 주연, 임권택 감독 연출로 1980년 상영된 걸작이다.)

이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웬만큼 끝낸 상태다. 역시 액션, 느와르 장르다. 오프닝과 엔딩은 이미 정리가 돼 있다. 자원봉사단, NGO의 피해사례 등을 모으고 있다. 액션, 느와르만 찍는 이유에 대해서는 "거친 남자들이 느끼는 교감, 땀냄새 나는 우정에 끌린다"고 설명했다. 영화 < 히트>가 좋은 예다. 범인 로버트 드니로와 형사 알 파치노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두 사람이 휴게소에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 주는 감동 같은 것이다.

차기작에도 원빈을 캐스팅하는 것에 대해서는 손을 내저었다. "서로에게 안 좋다"고 말했다. 다만 "서로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차차기작 쯤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면서 "신인이든 기성 배우든 원빈처럼 숨어있는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가 '제2의 원빈'이 될지 주목된다.

이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웬만큼 끝낸 상태다. 역시 액션, 느와르 장르다. 오프닝과 엔딩은 이미 정리가 돼 있다. 자원봉사단, NGO의 피해사례 등을 모으고 있다. 액션, 느와르만 찍는 이유에 대해서는 "거친 남자들이 느끼는 교감, 땀냄새 나는 우정에 끌린다"고 설명했다. 영화 < 히트>가 좋은 예다. 범인 로버트 드니로와 형사 알 파치노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두 사람이 휴게소에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 주는 감동 같은 것이다.

차기작에도 원빈을 캐스팅하는 것에 대해서는 손을 내저었다. "서로에게 안 좋다"고 말했다. 다만 "서로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차차기작 쯤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면서 "신인이든 기성 배우든 원빈처럼 숨어있는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가 '제2의 원빈'이 될지 주목된다.

<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