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베트남 친정부모 오셔서 일 많아도 신나요"

시어머니 김옥인(68)씨는 "배추 씻는 것부터 밥하는 법까지 살림을 차근차근 배우더니 요즘은 이웃집에 김치도 담가주러 간다. 시장이든 병원이든 매일 나를 따라다니며 한국말도 1년 만에 다 배웠다"며 며느리를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전티쯧씨가 만들어준 쇠고기 볶음을 먹어본 친정어머니 윈티니오(Nguyen Thi Ngo·58)씨는 "내가 요리를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한국에서 언제 이런 요리를 다 배웠느냐"며 한 그릇을 후루룩 비웠다. 딸 만나러 오느라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는 친정아버지 전탄(Tran Thanh·60)씨는 "막내딸을 스무 살 때 혼자 먼 곳으로 떠나보냈지만 인상도 성격도 좋은 시부모님을 만나 걱정할 일이 없겠다"며 "딸과 사위를 반반씩 닮은 손자가 보물처럼 예쁘다"고 했다.

추석을 맞아 처음 만난 양가 부모를 끈끈히 이어주는 건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재롱을 피우는 손자 윤호다. 쌍꺼풀이 짙게 진 눈은 엄마를 닮았고, 둥근 두상과 활발한 성격은 아빠를 닮았다.

전티쯧씨 친정 부모는 서울시장애인재활협회와 기업 등의 후원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한국과 베트남의 '대가족'은 지난 4일부터 63빌딩, 아쿠아리움 등 서울 곳곳을 둘러보고 워커힐 호텔에서 1박 하며 줄곧 같이 지냈다. 난타공연과 디너쇼도 관람하고 단체로 가족사진도 찍었다. 양가 부모는 치과에서 무료 스케일링도 받았다. 한국어와 베트남어 통역은 전티쯧씨가 맡았다.

남편 채씨는 "비록 말은 잘 안 통해도 며칠 같이 지내니까 서로 표정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며 "쩍이 굳이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이제는 장인 장모님 손을 잡아끌고 어디든 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전티쯧씨는 친정 부모가 다음 달 3일 고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보여 드리고 싶은 것도, 해 드리고 싶은 음식도 많다. 추석연휴엔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에 가기로 했다.

"서울대공원은 호찌민에 있는 공원이랑 비슷해요. 베트남에서는 볼 수 없는 '가을 공원'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전티쯧씨는 "주특기인 월남 쌈과 미역국을 부모님께 만들어 드릴 것"이라며 "한국에서 맛있는 것 많이 드시라고 남편이 아버지가 한국에 오시기 직전 100달러를 베트남으로 보내드려 튼튼한 틀니를 해 드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전티쯧씨는 "한국 엄마 아빠와 친구들이 있어 하나도 외롭지 않다"고 씩씩하게 말하면서도, 3년 만에 만난 부모와 쉴 새 없이 눈을 마주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섯 오빠 아래 막내딸로 자란 전티쯧씨는 한국에 처음 시집왔을 때만 해도 말이 안 통하고 음식도 맞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한국 어딜 가나 김치와 마늘 냄새가 나는 게 영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전티쯧씨는 "윤호를 임신했을 때 시아버지가 매일 내 손을 잡고 쌀국수를 먹이러 다니셨어요. 쌀국수만 먹고 태어난 아기여서 아들 별명은 '국수'가 됐죠"라고 말했다.

이제는 유창해진 한국어 실력이나 살림솜씨는 모두 전티쯧씨가 억척스레 노력한 결과다. 남편 채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어 사전을 가지고 와 1년 동안 끙끙 싸매고 공부하더니 금방 입이 트이더라"며 "매일 밤 퇴근한 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쩍의 취미"라고 했다.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원으로 일하는 채씨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삶의 원동력인 아내와 윤호를 위해 열심히 일해 다른 베트남 다문화 가족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전티쯧씨는 "남편은 매일 아침 윤호를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청소, 기저귀 갈기, 설거지를 해준다"며 "베트남에서 오신 친정 부모님께 예의 바르고 살갑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니 더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