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쌓은 기술 네팔인에게 전수하는 3人] 히말라야 雪山 녹일 '뜨거운 노년'

평생 쌓은 경험과 기술로 봉사하려는 열정엔 정년이 없다. 몸은 고달프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기쁨과 성취감으로 이겨낸다. 히말라야 턱밑 네팔까지 찾아가 봉사활동의 보람에 뜨거운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수입은 우리 돈으로 한 달 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절반 이상을 쪼개 학생들 장학금 등으로 내고 있다. 마음 씀씀이가 히말라야만큼 크고 높은 시니어들이다.

◆농업진흥원 출신 신찬수씨

4년째 ‘새마을운동 전도사’ “가족 그립지만 뿌듯해요”

"1960년 정읍농림고를 졸업할 무렵에 보고 느낀 것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평화봉사단으로 마을에 온 미국인들이 봉사활동하는 것을 보고 '나도 나이 들면 가난한 나라로 가서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남쪽으로 310㎞ 떨어진 카필바스투 지역의 모티풀 마을. 2100가구에 1만2800명이 사는 농촌이다. 신찬수(69)씨는 작년 8월에 왔다. 마을회관과 쓰레기소각로를 만들어 주고, 경운기·이앙기·탈곡기로 농업기계화와 소득증대법을 알려주었다. 손으로 씨를 흩뿌리는 '산식(散植)농업'밖에 모르던 네팔인들이 이젠 이랑을 내고 줄 맞춰 심는다.

신씨는 전북 농업진흥원에서 31년을 근무하고 12년 전 정년퇴직했다. 이후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시니어봉사단 시험을 치러 합격, 2001년부터 필리핀에서 4년, 이후 네팔에서 4년째 '새마을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겐 두 아들과 두 손녀가 있다. "난들 왜 안 보고 싶겠어요? 그럴 땐 전화로 달래요." 그는 "사실은 아내·자식·친구·친척 할 것 없이 다들 말렸었다"며 "하지만 필리핀·네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떠나기 힘들다"고 했다.

◆대한항공 출신 정우옥씨

“가난한 나라 젊은이 돕자” 자동차 정비기술 가르쳐

모티풀에서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인구 20만 포카라시(市)에 있는 트리부반 대학교 포카라캠퍼스. 안나푸르나 설산(雪山)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이다. 정우옥(66)씨는 여기서 학생 50여명에게 자동차 정비기술을 가르친다. 올봄에는 한국의 자동차관련 책들을 정리해 네팔어로 번역한 교과서도 발간해 나눠줬다.

대한항공 지상정비 분야에서 20년간 일했던 그는 어느 날 신문광고를 보고 여생의 방향을 결정했다. 코이카의 시니어 봉사자로 2004년부터 2년간 태국의 촌부리 지역, 2006년부터는 네팔 트리부반대학 카트만두캠퍼스 자동차공학과에서 자동차이론과 정비기술을 가르치다가 작년 4월 포카라로 왔다.

"평생 갈고닦은 기술과 경험을 버려둔 채 양로원이나 노인정에서 소일할 이유가 없잖아요. 눈을 크게 뜨면 나를 필요로 하는 젊은이가 엄청 많아요. 가난한 나라 젊은이에게 전수하고 그들이 조금씩 윤택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즐거워요." 정씨와 엔진을 만지던 우턴 나할(18)군은 "사진으로만 보던 기계들을 선생님과 함께 뜯어 보며 배우니 너무 좋다"고 했다.

◆한국전력 출신 이대봉씨

韓電 34년 근무 경험 살려 정보시스템 통합 기술 전수

이대봉(59)씨는 작년 3월 서(西)울산지점장을 끝으로 한전 근무 34년을 접고 명예퇴직했다. 작년 12월부터는 네팔 정부의 통합데이터센터(GIDC) 구축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운영해온 정보시스템을 통합해 전자정부를 만드는 기초작업이다.

"어느 날 '34년을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내 나라만 위해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낯선 사람들, 그러니까 '사람'을 위해 일할 때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는 요즘 첨단 전기시설과 데이터백업 시설을 만들고 운용하는 기술을 가르친다. 이씨는 "한국에선 이미 주목받기 힘든 기술일지 몰라도, 우리보다 뒤처진 나라에선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모두 어깨 펴고 남을 돕고 살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