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覇에 홀리다

〈제11보〉(145~160)=바둑이란 1차원 게임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은 패(覇)라는 암초를 만나 얼마나 당황했을까. '다른 곳에 한 수 응수시킨 뒤 되딸 수 있다'는 절묘한 규정으로 이 동형(同型) 반복의 딜레마는 해결됐다. 하지만 패는 그 형태의 요사(妖邪)스러움 만큼이나 오묘한 마성(魔性)을 품고 있다. 패에서 하수(下手)가 득을 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프로들끼리도 패싸움을 통해 환각(幻覺)에 빠져들곤 한다.

우하귀에서 백이 패를 유도한 상황. 무거운 꼬리를 끌고 다니느니 여차하면 잘라 떼 주고 대가를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U를 움직여 중원을 제패하려는 야심도 있다. 146 팻감 때 147, 149의 반발이 치명적인 실착. 참고1도처럼 처리하는 게 옳았다. 중앙 흑 5점이 폐석(廢石)화하면서 중원이 쑥밭이 됐다. 반면 우변 백은 아직도 패맛 때문에 목숨이 붙어 있다.

펑첸은 이렇게 바꿔쳐서 좋다고 보고 반발한 것인데 순간적인 판단 착오였다. 패의 마성, 환각성이다. 팻감을 찾아 헤메는 펑첸의 표정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155를 생략하면 상변 흑이 사는 수가 없다(참고2도). 흑은 160을 받을 수 있을까. (150 156…△, 153 159…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