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도 울고 갈 류승룡의 얼굴

그의 연기가 아니라 그의 얼굴이 탐난다. 얼핏 보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무서운 얼굴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너그러움과 유머가 군대 훈련병 시절 맛본 초코파이처럼 일반인의 10배쯤 반갑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어울리는 이유가 뭘까? 강도, 조직폭력배의 보스, 조선 말기의 냉철한 경무관, 순수한 대학교수, 그리고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환호받았던 게이. 연기가 아니라 그가 가진 천 개의 모습 중 하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배우. 이번엔 영화 '퀴즈왕'에서 무능한 백수 가장의 모습을 품속에서 꺼내 보인 배우 류승룡을 만났다.

▶장동건 같은 꽃미남이 부럽지 않다.

무표정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느낌을 보여준 그에게 '장동건 같은 꽃미남이 부러웠던 적은 없었나?'라고 물었더니 주저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없었어요. 제가 지금 보다 못 생겼던, 잘 생겼던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노숙자도 잘 생긴 사람이 있고, 성공한 사람들도 서민처럼 평범하게 생긴 분들이 있잖아요. 이 얼굴로 다양한 삶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럭셔리 게이'와 '백수 가장'을 왔다갔다했다.

'퀴즈왕' 촬영 때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에서의 담 미술관 '최 관장'의 역할과 퀴즈왕의 백수 가장 '상도'의 역할이 극과 극이어서 힘들 법도 했을 텐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쪽을 털어내고 다른 쪽으로 옮겨가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았던 것 같아요. 럭셔리한 사람과 수수한 서민의 모습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밌기도 했고요."

▶사실 코믹연기가 내 전공이다.

이번 영화에서 '상도'로 분한 류승룡은 노름에만 몰두하는 무능한 가장 역을 맡았다. 구수한 사투리를 도구 삼아 능글맞게 펼치는 그의 연기는 큰 웃음을 자아낸다. "사실 연극 무대에서 코미디를 많이 했었어요. 실제 성격도 밝은 편이고, 사람들을 많이 웃겨요. 그래서 편하게 연기 할 수 있었어요."

▶데뷔가 늦은 게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류승룡은 '난타'에서 5년 동안 활약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청춘을 바쳤다. 그 후 장진 감독과 함께 연극을 하며 비로소 영화 쪽으로 기회를 잡았다. 35세의 늦은 나이에 영화 '아는여자'(2004년)로 데뷔했다. 데뷔가 늦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때 좋은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타'가 대사가 없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호흡이나 반전, 몸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20대 때에만 담을 수 있는 스크린 속의 내 모습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소진했을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