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土地문서

〈제12보〉(161~180)=침착함과 냉정함은 모든 승부에 적용되는 덕목. 바둑에선 그 중요성이 훨씬 더 강조된다. 스포츠와 달리 동작(動作) 아닌 머리로 모든 전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동도 않고 정좌해 있지만 마음속은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한 번 흔들리면 평정심을 되찾기 쉽지 않다. 바둑에서 "실수가 실수를 부르는" 경우가 수없이 반복되는 이유다.

우하귀 패싸움의 와중에 백이 △로 팻감을 쓴 장면. 전보(前譜) 진행에서 마음이 상했던 펑첸, 느닷없이 161, 163의 회돌이를 감행한다. 흑은 참고도 1로 일단 우변을 접수하는 게 최선이었다(1이 놓인 후엔 백A로 때려내도 흑D까지의 수순으로 백이 잡혀 있다). 그런 뒤 7까지 중앙을 깎았으면 아직 더 버텨 볼 수 있는 형세. E의 회돌이는 언제건 흑의 권리다.

결국 168까지 흑은 우변과 좌중앙 백 5점을 잡았고, 백은 그 대가로 좌하쪽 흑 9점에 168이란 중원 '토지문서'를 확보했다. 이 거래는 누가 봐도 백의 횡재였고 바둑도 사실상 끝났다. 이성을 잃은 펑첸, 특유의 '스포츠맨십'까지 발휘해 항전을 계속했으나 216수 만에 항복했다. 기보 해설은 180수에서 끊기로 한다.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