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버렸을까… 영화 찍으며 답 찾았죠"

한국은 어린 아들 딸들을 벽안(碧眼)의 부모 품에 서슴없이 내주었지만 아이들은 자라나 연어처럼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외교관, 스포츠 스타, 영화감독이 되었다. 한국말이 아닌 언어로 그들이 묻는다. 왜 나를 내버렸느냐고. 왜 내겐 엄마가 둘이냐고.

해외 입양아인 태미 추(35·한국명 추동수) 감독이 다큐멘터리 '나를 닮은 얼굴(30일 개봉)'을 찍은 이유도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영화는 서른 살이 돼서야 생모를 만난 미국인 브렌트 성욱 비즐리(34)와 그 어머니 노명자(52)씨의 이야기다.

그 자신이 9세 때 쌍둥이 여동생 에이미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된 추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해외 입양은 손쉬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피치 못할 이유로 아이를 입양시킨 생부모의 오명(stigma)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가 서툰 그녀와의 인터뷰는 영어로 이뤄졌다.

영화는 2005년 국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극적으로 재회한 모자(母子)가 이후 어떻게 가족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지 담담하게 그렸다.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아들과 아들의 생사조차 몰랐던 어머니가 30년 만에 만나 충격과 회한을 거쳐 새롭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영화에 있었는데, 브렌트와 노씨 이야기가 워낙 강렬해서 두 사람에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노씨 모자가 출연한 것도 기막힌 우연이었다. 추 감독이 한국에서 노씨를 처음 만나고 몇 주 안 돼서 아들인 브렌트가 미국서 이메일을 보냈다. "입양인 단체 홈페이지에서 영화 촬영 사실을 알았는데, 뜻이 좋으니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브렌트에게 '얼마 전 당신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느냐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입양된 추 감독은 당시만 해도 '미국이란 멋진 나라'에 간다는 사실에 들떠서 입양의 실체를 전혀 몰랐다. "그때 엄마가 '몇 년만 헤어져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만나자'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사실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잘못 알고 계셨던 거죠."

막연히 뉴욕이나 LA 같은 도시를 생각했던 그녀는 뉴욕주의 캐나다 국경 근처 '힐튼'이란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온통 옥수수밭뿐이고 쇼핑몰 하나 없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동네"였다. 그녀는 17세 되던 해 양부모에게 독립을 선언하고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왔다. 이후 뉴욕주 이타카(Ithaca)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아들을 하나 둔 양부모님은 딸을 원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었어요. 백인 아이를 입양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니까 우리를 입양했죠. 흑인은 원치 않았고요." 말을 아꼈지만 "독립한 뒤 양부모와 일절 연락하지 않는다"는 말로 양부모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톨리(Tolle)라는 미국 성(姓)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그녀는 1994년 한국 입양기관에 '엄마를 찾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8개월 만에 친엄마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쌍둥이 자매와 엄마가 만난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만나자마자 엄마도 우리도 엄청나게 울었어요. 행복하고도 슬펐어요. 그렇지만 뭔가 치유되는 느낌은 분명했죠."

추 감독은 2001년 아예 한국으로 들어와 'ASK(Adoptee Solidarity Korea·국외입양인연대)'라는 입양인 모임을 만들었다. 동생은 현재 뉴욕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추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여러 아시안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호주의 4개 도시에서 열릴 영화 상영을 위해 27일 출국한 그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입양뿐 아니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나를 닮은 얼굴'은… 30년 만에 만난 母子감격의 포옹 그 후…

출생 직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작은 마을로 입양된 브렌트 성욱 비즐리는 2005년 한국의 입양인단체 '골(GOA'L)'을 통해 생모 노명자씨를 만났다. 만남은 짧았고 어머니와 한국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2년 뒤 한국을 다시 찾은 브렌트는 모든 것을 주려고 하는 한국의 어머니와 정신분열증을 앓는 미국의 어머니를 두고 혼란과 고민에 빠진다. 결국 브렌트는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정착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