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친부모 찾아주다 보면 언젠간 저도 부모님 만나겠죠"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입양가정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필립 라페리(36·한국명 강기영)씨는 지난 1년간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80여 명의 친부모를 찾아줬다. 그 역시 6살 때인 1980년 프랑스로 간 입양아 출신이다.

그는 "수십년 만에 친부모를 찾아나선 입양인이 많은데 정작 친부모 쪽에서 만나기를 꺼린다는 얘기를 전할 때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라페리씨도 입양 후 18년 만인 1998년 한국에 왔지만, 12년 지나도록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그는 "가장 어렸을 적 기억이 7살 때 프랑스 학교에 간 것"이라며 "입양되기 전의 기억은 전혀 없다"고 했다.

라페리씨가 4살이던 1978년 부산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작성된 낡은 서류에는 '1에서 10까지 셀 수 있다. 조립식 장난감을 갖고 흥미있게 논다. 앞뒤 분간해서 옷을 입을 줄 안다'고 기록돼 있다.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그는 "부모 없이 차도를 건너던 4살짜리 꼬마를 행인이 경찰서에 넘겼다고 한다"며 "길을 잃은 건지, 부모에게 버림받은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뒤 2년간 부산의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됐다. 그 집엔 5년 전에 역시 한국에서 온 입양아가 있었고, 이후 그의 '누나'가 됐다.

성인이 돼서 만화 디자인 일을 하던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누나 때문이었다. 3살 때 입양된 누나는 "우리 뿌리는 한국"이라며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이야기를 자주 해 필립씨도 자연히 관심을 가졌다. 1998년 전주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3주 과정 모국(母國)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그는 "쑥 냄새를 맡으니 어린 시절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라페리씨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고국을 찾았지만, 첫 3년은 한국어 공부만 했다. 그는 "부모님을 만나면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싶어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2003년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입양서류를 훑어봤지만 알 수 있는 건 부산 거리에서 발견됐다는 것뿐이었다. 빨리 돌아오라는 프랑스 양부모에게는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이제 부모를 찾을 길은 언론밖에 없겠다고 생각, 몇몇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다. 2004년부터 3년간은 한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전국을 누비며 별미(別味)를 소개하는 코너였다. 라페리씨는 "그때 내 사연도 함께 소개돼 네 가족이 찾아왔었다"며 "DNA 검사까지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아픔과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들을 돕고 싶어 홀트에서 자원봉사 형식으로 일을 돕다가 지난해 정식 입사했다. 자신을 통해 친부모를 찾게 된 입양인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도 기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