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科學? 예술?

〈제2보〉(15~25)=종국(終局)으로 다가갈수록 착수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마지막 잔 끝내기 단계 때는 '정답'도 존재한다. 그러나 포석시대의 바둑판은 망망대해(茫茫大海) 같아서 선택의 가짓수는 넘치고 정답은 안개 속이다. 수학의 계승(階乘·factorial) 개념과 흡사하다. 한 판의 틀을 엮는 초반전을 예술, 전투로 우열을 겨루는 중반전은 스포츠, 모든 게 구체화된 종반전은 과학이라고 규정하는 게 가능할까.

흑 15가 노 타임으로 놓인 뒤 16엔 8분이나 소비됐다. 그 8분 동안 이창호의 머릿속에선 숱한 초반 설계가 그려졌다 지워졌다를 반복했으리라. 16으로 '가'에 두고 흑 '나', 백17, 흑 '다'면 쉽다. 백이 손해보는 진행도 아니다. 하지만 이창호는 우변을 굳혀주고 출발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종의 갈라치기인 16에 퉈자시도 7분을 고심하더니 17쪽에서 협공한다. 백은 여기서 참고도의 변화를 피해 22까지 우변을 정비했다. 20은 보기보다 알찬 자리. 23까지, 이 희귀한 형태의 바꿔치기의 승자는 누구일까. 흑이 실속을 챙긴 것 같지만 백도 선수로 안정했고 우상귀에 약간의 뒷맛이 있어 호각(互角)이란 결론. 그래 놓고 24로 씌우자 흑도 25로 똑같은 전(田)자로 응수한다. 잠자던 하변 화약고에 다시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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